영적전쟁의 승리 비결
-수6:1∼11-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는 이미 10여년 전에 “제국은 공식적으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190여개의 민족국가(nation_state)만 있을 뿐”이라고 분석을 했습니다. 특히 나이올 퍼거슨 하버드대 역사학과 교수는 ‘수명을 다한 제국들’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그 저널에 실었는데 그는 “기원전부터 존재해 온 제국이 20세기 이후 쇠퇴했지만 경제적 필요에
의해 제국은 언제든지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제국은 역사를 움직인다. 하지만 지난 100년간 존재했던 제국은 단명했다. 오늘날
제국은 공식적으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즉 오늘날의 세계는 ‘탈제국시대’, ‘탈식민지시대’라고 규정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동로마제국이 1,058년간 지속된 것을 비롯해 과거 제국들은 대체로 200~400년 정도 유지됐다고 했습니다.
그런데20세기에 생겨난 제국의 수명은 상대적으로 짧았습니다. 소련(1922~91)은 70년, 일본제국은 50년 밖에 유지되지 않았습니다. 아돌프 히틀러의
제3제국(1938~45)은 겨우 12년 만에 끝났습니다.
이처럼 신흥 제국은 허무하게 사라졌는데 이들 신흥 제국은 기존
종교와 법적인 틀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대로 무력을 휘두르며 기존 체제를 붕괴시키려 했습니다. 독일, 일본 등 신흥 제국의 야만성과 끝없는 영토 확장욕은 영국과 소련, 미국 등 라이벌 제국의 연합을 가져와 멸망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이처럼 눈에 보이는 제국들의 등장과 쇠퇴, 그리고 민족과 민족의 생존과 전쟁으로 쉴 날이 없습니다. 지금도 이스라엘과 가자의 전쟁, 우크라이나와 반군과의 전쟁으로 죄없는 민항기가 추격당하는 기가 막힌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그러나 주님께서는 이러한 보이는 나라를 넘어 보이지 않는 나라가 치열하게 전쟁을 하고 있음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나라와 사탄의 나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궁극적으로 이 세상의 종말을 통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려고 역사를 이끌어 가십니다. 그러나 사탄은 어떻게서든 자기의 나라를 세우려고 합니다. 바로 우리 삶의 현장이 영적 두 나라가 부딪히는 치열한 영적 전쟁의 현장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 영적 전쟁의 현장에서 어떻게 하면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습니까? 난공불락의 여리 고성을 정복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을 통해 그 비결을 살펴보기 원합니다. 이 비결을 통해 우리도 날마다 승리하는 역사가 넘치길 소원합니다.
노예에서 군사가 되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 목적이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중에 하나가 바로 그들의 신분을 바꾸시려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그들은 노예였습니다. 처음에는
요셉으로 인해 대접받는 존재였지만 요셉을 모르는 왕조가 등장하면서 그들은 히브리인 노예로 전락했습니다. 마치 창조시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귀한 존재였는데 타락하여 죄의 종이 된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처럼 노예로 수백년을 산 자기
백성을 불러내시는데 결국 하나님이 만드 시는 것은 군대입니다. 하나님의 군대로 그들의 신분을 바꾸세요. 곧 노예에서 군대로 변 화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2장 41절을 보세요.
사백 사십 년이 끝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
애굽에서 나오는 첫 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무엇이라고 부르십니까? 여호와의 군대라고 하셨습니다.
수백년 노예 생활을 한 자들인데 그 날부터 자기의 군대라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민수기1장 3절에서도 이스라엘 중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모든 자를 너와 아론은 그 진영 별로 계수하라고 하십니다. 군대라고 하시고 실질적으로 군대로 조직 하십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동안 세상의 가치관의 종이 되어 살고, 죄의 노예가 되고, 심지 어 돈의 노예가 되어 살 때 얼마나 비참한 삶을 살았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노예상태에 있던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부르시어 하나님의 군사, 곧 하나님의 군대로 만드시는 것입니다. 구원하실 때부터 군대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진정으로 노예가 군사가 되고, 노예의 무리가 강력한 군대가 되려면 무엇이 절실 합니까? 두 말할 필요없이 훈련과 무장이 절실한 것이예요. 그 훈련의 장이 바로 광야 40년입니다. 그들이 수백년 동안 애굽의 종살이를 하면서 갖게 된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노예 근성에 따른 원망과 불평 그리고 낮은 자존감에서 오는 상처와 고집, 피해의식으로 가득차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광야 40년동안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노예 상태있는 그들을 자기의 군대로 변화시키십니다. 40년 광야 훈련을 통해 너무나도 친절하게 하나님이 누구신지 보여주시고, 생명 말씀을 주시고, 순종하는 법을 가르치시며, 먹고 사는 것이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가르치십니다. 특히 가장 중요한 물을 통해 완전히 맡기는 훈련을 시키십니다. 수 많은 시행착오의 훈련 속에서 그들은 서서히 세상을 이기는 군대, 차원이 다른 하나님의 군대로 만들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모세를 보면 소망이 있습니다. 그에게는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모세는 말씀의 사람이요, 기도의 사람입니다.
그는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 기록 한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의 맥을 간파했습니다.
언약의 의미를 온전히 알고 있었 습니다. 그는 창조와 타락과 언약과 구원의 흐름을
말씀과 역사속에서 체험한 사람입니다.
모세는 백성이 노예근성으로 원망할 때 그는
아들근성으로 아버지께 엎드렸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수백년 동안 세상은 노예근성을 주었지만 말씀은 하나님의 아들임을 가 르쳤습니다. 따라서 기도할 때 막연히 엎드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주파수가 맞은 것입 니다. 하나님과 자녀의
언약관계를 붙잡고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모세가 엎드리면 하나 님의 영광이 임하여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이처럼 말씀과 기도로 온전히 무장된 사람이 모세였습니다.
한 가지 더 모세에게 중요한 것은 그의 속사람입니다. 그의 속사람은 온유함으로 가득찼습니다. 지상에서 가장 온유한 자라고 했습니다. 온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온유하다고 하셨는데 그것은 힘이 있으나 힘을 절제하는 능력이요 인격입니다. 지도자로서
최고의 자질 을 갖춘 것입니다. 이것을 신약적 용어로 말하면 바로 제자도입니다. 예수님을 닮은 것입니다. 모세의 이런 제자도가 선천적인 것이 아니예요. 40세부터 80세까지 미디안 광야에서
훈련을 받은 결과인 것입니다. 그는 자기 부인의 최절정까지 간 것입니다.
40대에는 자신이 하려다가 사람을
죽였어요. 애굽 왕실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 힘으로 하려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놀랍게도 애굽 왕실 교육보다 더 중요한
하나님의 학교를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미디안 광야에서 도망자의 신세로 40년을 훈련 받게 하신 것입니다. 이제80세의 노인이 되었을
때 비로소 하나님은 그를 부르셨고 그는 오히려 도저히 못가겠다고 해요. 보낼만한 자를 보내라고 해요.
하나님께서 노하실 정도로 자기를 부인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진정으로 자기는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제서야 모세는 하나님께서 쓰실 만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은 스스로를 절제할 줄
아는 온유의 제자도 위에 말씀과 기도의 사람으로 무장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무장된 하나님의 군대를 상상해 보세요. 하나 님께서 어떻게 쓰시겠습니까?
애굽의 최정예 군대도 상대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감히 하나님의 군대를 이길 세상의 세력이 없었습니다. 애굽과 요단 동편의 왕들과 요단 서편의 31왕들이 다 하나님의 군대 앞에 패배했습니다.
우리 LWC가 바로 이런 하나님의 군대로 훈련되고 무장되어야 합니다.
더이상 세상과 죄의 노예로 살아선 안됩니다. 숫자만 늘어나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훈련되어야 하고 무장 되어야만 합니다. 제자도로 인격이 변화되어야 하며,
말씀과 기도로 무장해야 합니다. 여기에 성령이 부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화,수요일은 제자훈련에 매진, 금요일은 기도에
매진합니다. 물론 새벽기도마다 엎드립니다. 그러면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군대가 되는 것입니다. 이 역사가 우리 안에 반드시 넘쳐 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작전을 구하라
하나님의 작전을 구하라
길갈에 진을 친 하나님의 군대를 맞선 것은
가나안의 첫성 난공불락의 여리고 성이었습니다. 여리고
성은 2중 성벽에 그 성벽의 두께만 2m정도로 알려져 왔습니다.
요단을 건너 왔는데 도저히 무너질 것 같지 않은 여리고성이 그들 앞에 막아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수6:2,3절을 보세요.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너희 모든 군사는 그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 나아갈 것이요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며 그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것이며
난공불락의 여리성을 정복하는 영적 전쟁에서
하나님께로 부터 작전이 옵니다. 여기 몇가지 중요한
전략의 원리가 있어요. 역시 군사라고 말씀하세요. 특히 모든 군사라고
하심으로 몇몇 사람의 전쟁이 아닌 모든 이스라엘 전체의 영적 전쟁임을 가르치십니다. 곧 최선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체적인 방법으로 성을 하루에 한 번씩 돌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일곱째
날에는 일곱번을 돌라고 하십니다.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행진하므로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 이 성이 무너지는
것임을 증거합니다. 그렇게 마지막 날 마지막 바퀴를 돌고 소리쳐 외칠 때 그 성이 무너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특히 중요한 것이 6장 10절입니다.
특히 중요한 것이 6장 10절입니다.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리게 하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그리하다가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외치라 하는 날에 외칠지니라
이 말씀이 무엇을 알리십니까? 이것은 단순한 돌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기도로 그 성을 묶는 것입니다. 영적 전쟁에 임할 때 가장 중요한 태도는 사람의 감정과 느낌과 마음대로 말하고
싶은 유혹을 이기는 것입니다. 만약 첫날부터 말하도록 허락했다면 13바퀴를 돌기도 전에 이스라엘 스스로 무너졌을 것입니다. “왜? 도는 것이냐?, 이것이 무슨 전략이냐? 그러지 말고 활을
쏘고 나가서 싸우자?” 분분하게 의견을 내고 자중지란을 일으켰을 것입니다. 사람의 속성, 군중의 속성을 정확히 아시는 하나님께서 침묵하며 돌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곧 기도하며 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대하며 돌라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순종하며 돌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적 전쟁의 현장에서 살면서
난공불락의 여리고와 같은 문제를 만나면 먼저 하나님께 전략을 달라고 간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응답이 올 때까지 침묵하며 기도하며 하나님을 뜻을 구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으로 부터 전략이 왔을 때 그것이 내 이성으로, 내 경험으로 이해가
안된다 할지라도 기도하며 순종하십시오. 반드시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으로 승리케 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언제 순종하기 힘듭니까? 성을 13바퀴 돌라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전략입니다. 이처럼 이성과 말씀이 부딪힐 때, 경험과 말씀이
부딪힐 때 순종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 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이처럼 이성과 경험과 말씀이 부딪힐 때 진짜
순종이 필요한 것입 니다.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의 말씀이 이성적이고 경험과 같다면
순종하지 못할 사람이 어디있습니까? 우리의 이성과 경험을
초월해 역사하실 때 진정 순종의 기회가 오는 것입니다. 그러한 순종 은 반드시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가져오고, 상상할 수 없는 승리와 영광을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 때 우리는 그 역사 앞에 겸손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기념돌이
되는 것입니다.
라합을 구원하라
영적전쟁의 결과는 반드시 구원의 역사로 열매 맺게
되어 있습니다. 항상 심판과 구원이 함께 있습니다.
여리고성도 마찬가지입니다. 라합은 기생에 불과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여인을 통해 소망을 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라이언 일병 구하기(Saving Private Ryan) 영화를 아시지요? 오늘 여리고 성의 하나님의 작전을 보면 라합 일가 구하기와 같습니다. 라합은 여호수아가 보면
두 명의 정탐꾼을 살렸고,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정탐꾼들은 자기들을 내린 붉은 줄을 라합의 성벽집 창문에 내리라고 합니다. 그리고 여리고성이
무너지는 날 라합의 집에 들어와 있는 모든 사람을 구원할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붉은 줄은 예수님의 보혈을
예표 합니다. 여리고 성은 견고한 세상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은 멸망할
수 밖에 없는데 하나님 께서 마치 라이언 일병을 구하려 8명의 군인이 온갖 희생을 무릎쓰고 그를 살려 내듯이
예수님을 죽이시고 우리를 살리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6장 23절을 보세요.
정탐한 젊은이들이 들어가서 라합과 그의 부모와 그의 형제와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 어 내고 또 그의 친족도 다 이끌어 내어 그들을 이스라엘 진영 밖에 두고
보세요. 라합 한 사람만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라합을 통해서 그의 부모를 구원하셨습니다. 그의 형제도 구원하셨습니다. 그의 친족도 구원받았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바로 이 자리에서 구원
받은 백성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예수 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구하기를 하신 결과입니다. 예수님은 여리고 같이 멸망하는 세상에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자기 생명을
십자가에서 내 놓으셨습니다. 그 은혜를 받은 자가 바로 저와 여러분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사명은 무엇입니까? 아직 무너질 여리고 성 안에서 갇혀 살고 있는 나의 가족,
형제, 친척, 이웃들에게 붉은 줄을 내리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라합이 그들을 구원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라합이 가족을 다 자기 집에 모아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보게 할 수는
있었습니다. 이처럼 라합은 우리를 향한 상징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영적 전쟁은 생명을 건지느냐? 잃느냐? 로 귀결됩니다.
부족한 종이 성경 가운데 큰 은혜를 받은 말씀이 있는데 예수님께서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사건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물을 포도주로 바꿀 수는 없습니다. 목사도 할 수 없습니다. 그것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유혹에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영역입니다. 곧 예수님 만이 사람을 변화시켜 거듭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람을 거듭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가지 할 수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그 혼인잔치의 하인들처럼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는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물을 포도주로 바꿀 수는 없지만 부지런히 물을 항아리 아구까지 채울 수는 있습니다. 우리가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순종하고 그 성을 돌라하시면 13바퀴 기도하며 믿음으로 순종하여 돌수는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역사를 목도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바로 이것이 우리가 할 일이요, 우리의 사명입니다. 변화는 예수님이
일으키십니다. 우리는 그저 말씀에 순종하면 됩니다. 말씀으로 살면 됩니다.
부지런히 말씀과 기도의 훈련에 임하면 됩니다. 사람을 초대해 주님께 모시고 오면
됩니다. 나머지는 주님이 하실 것입니다.
라합을 통한 수평적 선교로 그의 부모, 형제, 친척이 구원받았습니다. 그런데 라합을 통해 수직적 선교가 이루어졌습니다. 그의 아들 보아스가 구원받았습니다. 그의 며느리 룻이 구원받았습니다. 이어서 오벳, 이새가 구원받고 다윗이 구원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자손 중에 우리 주 예수님께서 탄생하셔서 인류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한 사람이 바로 서면 가정이 세워지고, 친척이 세워지며, 자손이 세워집니다. 이제 우리의 영적 승리를 통해 각 가정의 남편과 아버지의 영적리더십이 회복되길 소원합니다. 돕는 배필로서의 아내의 역할이 온전히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각 가정에 무너진 예배의 제단이 회복되어 여러분의 자녀가 살고, 자손이 사는 역사가 넘치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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