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August 21, 2014

AUG. 17. 14. 주일강단 : 너는 복이 될지라!


너는 복이 될지라


-12:19 -
 

오늘 아침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 가운데 네 번이나 반복되어 등장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입니다.(2a,2b,3a,3b)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복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도 얼마나 복을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늘 음식을 먹는데 사용하는 수저에도 한자로 복 자를 새겨 놓습니다. 아마 몸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복이 되라는 것 같습니다. 베개닢에도 복 자를 새겨 놓습니다. 침상에 누워 잘때도 복이 들어오길 원하는 것입니다. 봄이 되면 대문에도 복자를 크게 붙여 놓습니다. 이처럼 동양 유교사상에서 말하는 복을 흔히 오복(五福)이라 합니다. 오복(五福)이란 말은 중국 고대 상서(尙書) 홍범편(洪範篇)에 기록 되어 있는데 옛 사람들이 인간의 행복에 대하여 정의해 놓은 것입니다오복(五福)은 수(), (),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 다섯 가지를 말합니다. ()는 장수의 복입니다. ()는 물질과 재산의 복입니다. 강녕(康寧)은 몸과 마음의 건강의 복을 말합니다. 유호덕(攸好德)은 덕을 행하며 즐겨 행하는 복을 말합니다. 고종명(考終命)은 제명대로 살다가 죽는 복입니다.

놀랍게도 오늘 성경도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복을 주시기 원하신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복이 세상이 말하는 복과 좀 다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복이라는 단어는 베라카라는 말인데 축복의 근원’, ‘선물이란 의미입니다세상의 복은 사람에게 오는 것이요, 사람이 받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하나님과 사람과의 언약 관계가 맺어지면서 사람 자체가 복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너는 복이 될지라"(12:2)고 하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람 스스로 복이 될 수 있습니까?

베라카라는 단어의 어원은 바라크라는 말인데 무릎을 꿇다라는 의미입니다. 곧 성경의 복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무릎을 꿇는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는 자가 바로 복이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 없이도 재물만 많으면 복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아무리 재물이 많아도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을 줄 모르는 사람이면 그는 여전히 불행한 사람입니다. 복은 물질이전에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복이 된 사람은 더 나아가 모든 삶에서 복을 나누어 주는 통로가 됩니다. 이것처럼 귀한 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세상은 오래 살아야 복이라고 하지만 성경은 사명대로 살아야 복이라 하십니다. 세상은 물질이 많아야 복이라고 하지만 성경은 정직하게 벌고 베풀고 나누는 삶이 복이라 하십니다. 세상은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복이라고 하지만 성경은 거듭한 생명이 복 이라고 하십니다.  세상은 제 명대로 살다가 죽는 것이 복이라고 하지만 성경은 영생을 누리며 영원히 하나님 나라에서 주님과 더불어 사는 것을 복이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런데 놀랍게도 이처럼 복을 주시고, 복이 되게 하시겠다는 약속이 아브라함에게만 주신 것이 아니예요. 바로 저와 여러분, 우리에게 하신 것이예요.

3b를 보세요.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이 땅의 모든 족속에게 흘러 우리에게까지 온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한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어요. 그것은 단지 약속이라는 것입니다. 이 약속은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예요. 여기에는 복이 될것이라는 약속에 합당한 삶이 따를 때에 비로소 약속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아브라함에게 주신 이 귀한 약속의 복이 우리 삶 속에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저와 여러분이 복이 될 수 있습니까?

 
1.  말씀을 따라 가는 삶을 살라.

12:13을 보세요.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 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이것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가정에게 주신 약속이었습니다. 그에게자손’,‘명예’,‘보호복의통로가 되게 해주시겠다는 놀라운 약속이었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이 이 약속의 말씀에 대해 어떻게 반응을 했습니까? 4절을 보세요.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갔고 

여기 보세요.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갔다고 했습니다. 곧 아브라함은 말씀을 따라 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면 말씀을 따라 간다는 것은 어떤 삶을 말합니까?

먼저 떠나는 것입니다.(1) 무엇을 떠납니까?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는 것입니다.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이 무엇을 말합니까? 아브람이 하나님을 모르던 시절, 곧 갈대아 우르에서 살던 삶, 아버지 데라가 달의 신을 섬기고 우상을 섬겼던 그집, 그 삶을 떠나라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과 관계없이 살던 삶을 떠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말씀을 따라가는 삶의 첫걸음입니다.

11:8을 보세요.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라고 했습니다.

여기보면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바로 우리가 읽는 창세기 12:13절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그를 부르셨을 때 그의 태도는 한마디로 순종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순종은 어느 때 하는 것입니까? 갈 바를 알지 못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것이 순종입니다. 곧 앞이 보이지 않는데 하나님께서 떠나라 하시니, 가라 하시니 가는 것이 순종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1b) 하나님께서 보여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비전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따라 가는 삶은 하나님 없이 살던 세상의 삶을 떠나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새 비전을 따라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75세에 부르십니다. 75세까지 아브라함은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 곧 하나님 없는 우상 섬기는 세상에서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께서 갑자기 그에게 나타나셔서 떠나라고 하시는 것입 니다. 내가 새롭게 보여주는 땅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75세까지의 가치관과 삶에 형성된 모든 관습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아브라함 은 순종하여 말씀을 따라 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따라 가십니까? 돈을 따라 가십니까? 세상의 향락을 따라 가십니까? 아니면 자기 생각을 따라 가십니까? 자기 욕심을 따라 가십니까?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그것이 복이 되는 비결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 없이 자신이 보기에 바르다는 신념을 따라갑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길의 결국은 패망이라고 했습니다.(14:12) 이것이 세상 사람들의 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의 길을 이러한 길을 떠나 새로운 말씀의 길, 순종의 길, 비전의 길을 걸어 가는 것입니다. 이 은혜가 날마다 넘치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2.  예배를 드리는 삶을 살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주신 약속대로 복이 된 두번째 이유는 그가 예배의 대상을 바로 알고 진정한 예배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12 5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드디어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말씀을 따라가 도착을 하였 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주신 땅에 도착하여 가장 먼저 한 것이 무엇입니까?

7b을 보세요.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예배입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도착하자 마자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계속해서 8절을 보세요.

②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세겜 땅에서 벧엘 동쪽 산으로 이사한 후에도 제일 먼저 한 것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었습니다.  

13 4절에 보면 애굽에 내려갔다 다시 올라 온 아브라함이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했습니다. 곧 예배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13 18절을 보세요.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여기 보세요. 네 번이나 아브라함이 이사할 때마다 하나님께 예배드렸다고 말씀하고 있습 니다. 이것은 꼭 이사할 때만 제단을 쌓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철저한 예배자였음을 보이시는 것입니다. 평상시에 예배드리지 않는 자는 이사해서도 예배할 수 없는 것입니다.

목회하면서 많은 성도들의 이사예배를 인도했습니다. 그런데 가장 마음에 남는 이사예배가 하나 있습니다. 젊은 부부인데 집을 사서 이사한다며 예배를 인도해 달라고 했습니다. 알았 다고 하고 갔더니 집안이 썰렁합니다. 아무 것도 없는 텅빈 집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직 이사하지 않았냐고 물으니 내일 이사짐이 들어온 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사짐이 들어오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예배를 올려 드리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제 마음에 감동이 왔습니다. 많은 경우 좋은 가구, 좋은 물건을 들여놓고, 다 정리된 후 예배를 드리고 싶어하는데 이 젊은 부부는 달랐습니다. 제 마음이 이상하게 기뻤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브라함을 보세요. 성경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까? 결국 말씀을 따라 가는 삶은 예배 드리는 삶과 하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경외하고 하나님을 따라 사는 사람은, 가정은 말씀의 길, 예배자의 길을 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못하면 예배도 나를 위해서, 우리 가정을 위해서 드리기가 쉽습니다. 13 18절에서 아브라함은 예배의 목적을 분명히 했습니다.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고 했습니다. 예배는 나를 위해서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높이고, 그 분만 경배하며, 그 분의 이름만 부르는 것이 진정한 예배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대로 복이 된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두 가지 입니다. 갈 바를 알지 못했지만 순종하고 말씀을 따라갔기 때문이요, 날마다 예배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3.  복을 버리는 길로 가지 말라

그런데 우리가 본문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또 하나의 부정적인 교훈이 있습니다. 바로 아브라함의 조카 롯입니다. 그는 우리에게 경각심을 일으키는 반면교사의 인물입니다.

12:4절을 보세요.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 무엇이라고 하셨어요? 롯도 그와 함께 갔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이 무슨 의미입니까? 롯 또한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공동체 안에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도 처음에는 말씀을 따라 아브라함과 같이 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롯의 생애를 보면 성경이 이상하리 만큼 자세히 포인트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놓치면 안됩니다.

아브라함 공동체가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돌아온 후에 아브라함과 롯이 헤어지는 사건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이 소유가 많아 더 이상 동거할 수 없어 이제 "나를 떠나가라"고 했을 때 롯은 어떻게 합니까?

13:10을 보세요.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여기서부터 롯은 아브라함과 정반대의 길을 가기 시작합니다. 그가 눈을 들어 본 것이 무엇입니까? 소돔과 고모라입니다. 그가 본 것이 무엇입니까? 소돔과 고모라와 그 주변의 피상적인 겉모습입니다. 에덴과 같고, 애굽 땅과 같았습니다. 그 곳에 가면 더 벌고, 더 잘 살고, 더 행복할 것 같았던 것입니다.

지금 롯이 무엇을 하는 것입니까? 이제까지 따랐던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오히려 떠났던 세상의 눈, 세상의 가치로 돌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눈을 들어 보았다고 했는데 그가 든 눈, 그의 안경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눈이 아닌 세상의 눈으로 보게 된 것입니다.

당시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하나님의 눈은 유황불과 지진으로 멸망시키실 수 밖에 없는 심판 직전의 타락한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롯의 눈에는 멸망할 세상의 성공만 보일 뿐이었습니다.  

13:11을 보세요.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드디어 롯이 결정을 합니다. ‘택하고, 옮기니, 떠난지라고 했습니다.

13:12b를 보세요. 롯은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롯이 눈을 들어 보고, 결정을 한 후, 계속 이사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꿈의 도시 소돔에 도착합니다.

19:1을 보세요. 저녁 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다가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은 아브라함처럼 롯이 이사한 사건을 계속 기록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다른점은 그 어디에도 성경은 롯이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고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따라가는 자는 예배자가 될 수 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눈을 들어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을 따라가는 자는 결코 예배자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롯은 멸망할 세상과 그 세상이 번뜩 보여주는 선악과에 취해 꿈의 도시 소돔에 가서 유력한 자가 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이민자가 와서 성공을 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롯이 세상의 것을 따라가는 내내 하나님께서 네가 복이 될 것이라는 아브라함 공동체에 주셨던 약속과는 점점 멀어져 갔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됐습니까? 소돔과 고모라에 유황과 불이 비처럼 쏟아질 때 그는 가까스로 탈출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무엇이라고 하셨는지 아세요? 마지막 때에 롯의 처를 기억하라(17:32)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기억하라는 므네모뉴오’ 라는 말은 '마음에 불러일으키다'란 뜻으로 단순히 기억하라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때 곧 지금 우리 시대에 롯의 처, 곧 사건을 마음에 불러 일으켜 세상에 미련을 두고 세상을 따라가는 것에 대해 절대로 그렇게 살지 말라는 경고의 말씀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교회에게 주신 새로운 비전, 새로운 기회를 따라 말씀을 따라 가는 삶을 사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매 주일마다 식탁가정예배의 등불이 환하게 밝혀 하나님을 위하여 예배하는 여러분의 가정 되시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복이 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 남에게 복을 주는 복의 통로가 될 것입니다. 롯의 길을 버리고 오직 아브라함의 길을 걸어 복에 복이 되는 여러분이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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