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November 21, 2014

NOV. 16. 14. 주일강단 : EPH SERIES 11 충만하여 삽시다 2

KM과 EM이 함께하는 에베소서 강해시리즈 11




충만하여 삽시다2


5:1533
 





하나님께서 에베소서를 통해 우리 성도에게 주시는 한가지 너무나도 귀한 선물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눈을 갖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은 두 가지가 있습 니다. 

먼저는 망원경적 눈입니다. 에베소서를 통해 우리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심으로부터 시작해서 부르심 그리고 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어 영원한 기업을 얻게 하실 것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이것이 비전이요, 소망이요, 방향입니다. 이 비전을 잃어버리면 우리는 인생의 방향을 잃어 버리게 됩니다. 혼돈과 방황속에 헤메이고 맙니다. 그러나 비전이 뚜렷하고 분명하게 보이면 인생이 클리어해 집니다. 어디로 가야할 줄 압니다. 더 이상 방황하지 않습니다.

다음은 현미경적 눈입니다. 에베소서는 영원부터 영원까지의 망원경적 시각을 우리에게 주 는 동시에 현재의 우리의 모습을 정확하게 볼 수 있는 눈을 줍니다. 우리가 과거에 어떤 존재였는지, 이제는 어떤 존재인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분명하게 보게 하는 것입 니다. 그래서 하나되어 일치되고, 거룩하게 살고, 사랑안에서 행하고, 빛안에서 행하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바울은 바로 이 두 눈으로 교회와 모든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함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예요. 그래서 에베소서의 전반부 13장의 말씀은 계시를 통해 바로 이 두 눈을 갖게 하는 것이고, 또한 에베소 성도들이 이 눈을 갖게 해 달라고 두 번 이나 간절히 도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아울러 에베소서의 후반부 46장은 그 하나님의 세계관을 갖은 우리가 이제는 전혀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임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그리스도 안에서 과거의 옛사람과 전혀 다른 새사람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않으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삶을 지속적으로 누리며 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난 주 말씀이 바로 성령 충만함을 받는 것이 이 악한 때에 기회를 다시 사는 삶이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시 주신 기회 곧 옛 사람에서 새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 시는 기회, 어둠이었는데 이제는 빛이 되어 살게 하시는 기회가 우리에게 다시 주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새로운 기회를 새롭게 살아가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는 것은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만 주신 것이 아닙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 누구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기회를 산 모든 성도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 입니 다.

성령의 충만함의 열매는 무엇이라고 했어요?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게 만들며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항상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서로 피차 복종하는 성숙을 열매 맺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충만함으로 시작되는 그리스도 안의 새로운 삶은 바로 가장 가까운 인간관계인 부부사이에서 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성령충만함의 우리 삶에서 어떻게 나타나야만 합니까?


1. 가정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정에서 먼저는 부부 사이고, 그 다음은 부모와 자녀 사이입니다. 지난주에 이어서 오늘도 이 본문이 계속이어지는 것이예요. !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부부 사이에 예수 그리스도가 충만히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남편은 그리스도가 교회를 위해 자신을 주신 것처럼 아내를 위해 다 내어 주는 것이고, 아내는 교회가 그리스도를 사랑하신 것처럼 남편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비유가 아니라 원리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성령충만함이 어떤 관계 속에 나타날 때는 항상 그 사이에 예수 그리스 도가 계시다는 것입니다.

만약 성령충만함이 없게 되면 부부 사이에도 예수님이 나타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누가 나타납니까? 아담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아담이 나타나면 자기 주장 밖에 할 것이 없습니다. 자기 사랑 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다투게 되고, 상처받을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입 니다.         

이 원리는 부모와 자녀간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6 1절을 보세요.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이 말씀은 5 18절 곧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는 키 구절에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옳은 것인데 그것이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성경은 오히려 말세에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 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딤후3:1,3)라고 하십니다.

자녀들이 자기 중심적이고, 돈을 사랑하고, 자랑과 교만 가운데, 비난과 비방 가운데 살아 가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 부모를 거역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부모보다 더 배웠고, 옳고, 잘 안다는 교만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부모들이 겉으로 말을 안하고, 드러내지 않기에 그렇지 자녀들의 공경치 않음과 불순 종 때문에 속이 썩은 부모들이 한 두 가정이 아니예요.  

그러나 부모가 성령이 충만하고 자녀도 성령이 충만하면 전혀 다른 역사가 일어납니다.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

오늘 이 말씀은 부모에게만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예요. 남편과 아내가 각각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하는 것처럼 부모와 자녀가 각각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세례요한을 보세요. 모태에서부터 성령이 충만하셨어요. 태중의 세례요한이 태중의 예수님을 알아봐요. 그래서 모친이 서로 만날 때 태아가 기쁨으로 뛰놀았다고 해요. 성령이 충만히 역사하신 것입니다.(1:4144)  

사무엘을 보세요. 어린 시절에 얼마나 성령이 충만한지 몰라요. 엘리에게서는 하나님이 떠났는데 어린 사무엘에게는 성령이 임하여 말씀하시잖아요.

예전에 대구 동부 교회에 아주 훌륭한 목사님이 계셨어요. 김덕신 목사님이세요. 대구 지역에 큰 부흥의 통로가 된 종이었어요. 이 분의 간증을 들어보니 여덟살쯤에 동네에서 무당이 큰 굿을 하는데 그것을 구경갔다고 해요. 그런데 무당이 굿을 하다가 오늘은 굿이 안된다는 거예요. 작두에 올라갈 수가 없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어린 김덕신 앞으로 오더니 바로 이 아이 안에 예수가 있어서 굿을 할 수가 없다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린 아이라 할지라도, 자녀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예수님이 충만히 거하시고, 성령의 충만 함을 받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자녀들이 성령 충만함을 받아 살도록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께 강청을 해야 합니다.

자녀들이 성령충만하면 부모를 공경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이 자녀들아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전제가 무엇입니까? 주 안에서 입니다. 성령충만함을 받으면 주 안에서 부모님을 공경하고 사랑하고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녀도 성령충만하지 않으면 아담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담으로 충만하면 부모를 공경하기가 쉽지 않아요. 왜요? 아담이 하나님 아버지를 공경하지 않았잖아요. 그 아버지의 말씀을 어겼잖아요? 그러니 아담으로 충만하면 하나님 아버지 뿐만 아니라 육신의 부모도 제대로 공경치 않는 인간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보세요. 아버지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종하셨어요. 예수님이 얼마나 자유롭게 하실 수 있는 분이예요. 그런데 자신을 오직 아버지의 뜻대로만 행하겠다고 하십 니다. 최고의 효자가 예수님이세요. 그러므로 우리 자녀들이 성령충만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처럼 성령충만하여 주 안에서 부모를 공경하는 자녀에게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주셨어요. 그것이 무엇입니까? 3절을 보세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인간의 가장 기본 계명인데 그것만 잘 해도 잘되고 장수하리라는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우엉캐기) 아직 부모님이 살아 계시다면 우리부터 이러한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본을 보여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자녀들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자녀들이 성령충만을 받아야 한다고 하실 뿐만아니라 4절에는 아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이 말씀의 이면은 아버지들이 자녀를 노엽게 하는 일을 많이 한다는 것입니다. 왜요? 자녀 들이 잘못 행하는 것을 보면 안타까운 나머지 자신의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쏟아 놓게 되는 것입니다. 감정으로 대하면 아이들 안에 노여움이 쌓입니다.

감정이 아니라 성령으로 대해야 합니다. 성령이 충만하여서 아이들을 대할 때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이 충만하면 아이와 대화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먼저 회복한 후 대화하세요.

그러므로 여러분!

식탁가정예배를 귀하고 복되게 여기셔야 합니다. 밥먹으면서도 감정으로 자녀들에게 말하기 쉬운 자가 바로 우리입니다. 그러나 식탁가정예배에서 예배드리면 성령의 충만함이 그 식탁 위에 임합니다. 아버지에게 임합니다. 자녀에게 임합니다. 부드러워집니다. 사랑이 넘칩니 다. 주의 교훈과 훈계가 흘러 나옵니다.

저 자신도 사랑하는 딸 아이와 에베소서 전체를 이렇게 식탁가정예배를 통해 나눌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귀한지 몰라요. 이렇게 지금 할 수 있는 가정은 복중에 복이예요. 그러나 아직 안되는 가정은 부부가 먼저 간절히 예배하고 기도하며 자녀들이 성령충만해서 식탁 가정 예배가 가문 대대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 은혜가 여러분 가정 대대로 반드시 흘러 넘치게 될 줄 믿음으로 선포합니다. 아멘!   

 
2. 사회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5절을 보세요.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이 말씀이 매우 중요한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새로운 삶이 모든 사회분야에서 일어나야 하는 것임을 말씀 하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예수 안에서 변화되었다면 그 변화의 영역은 모든 삶 전반에 미치는 것입니다. 내가 변화되었다고 하면서 어느 특정한 상황에서만 변화된 모습이 나타나면 무엇인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변화되면 모든 면에서 변화의 모습이 나타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충만함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은 당시 노예와 주인의 관계 곧 사회적으로 가장 심각한 위화감이 있는 관계에서조차 성령의 충만함 속에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함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노예된 자들에게 노예 해방의 극단적 선동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상하리만큼 상전에게 성실함으로 순종하라고 합니다. 마치 노예제도를 인정하는 것같이 보입니다. 그러 나 바울이 여기서 말씀하려는 것은 그런 제도적 개선을 말하려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더더욱 노예제도를 인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된 하나님의 성도들, 장차 상속자들의 성숙함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현재의 신분이 노예인데,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노예의 신분에서의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하니 반기를 들고 혁명을 일으켜 세상을 뒤집으라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속여 기쁘게 하려는 자가 되지 말고 그리스도의 노예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라고 하십 니다. 곧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리스도인 노예라면 그리스도가 충만한 노예로서, 곧 성령이 충만한 노예로서의 모습이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8절에 그 이유가 나옵니다.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 라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이 자신의 자리에서 어떠한 마음으로 어떻게 행하는지 보시고 그 행한대로 받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노예로서나 주인으로서나 중요한 것은 신분 이전에 하나님 앞에서의 각 존재요, 각 존재의 삶입니다.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하나님께서 는 노예나 주인이나 이러한 외적 신분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벗겨낸 그 속사람, 인격, 삶의 태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살고 있는가 없는가를 보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노예로 살던 주인으로 살던 하나님께 더 중요한 것은 그 각 사람 존재 자체인 것입니다. 9절을 보세요.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 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

보세요. 여러분! 주인들의 가장 큰 죄가 무엇입니까? 자기의 신분으로 노예를 위협하고 군림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인들, 상전들 곧 권세 있는 자들이 가장 범하기 쉬운 죄입 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상전이 하늘에 계심을 알라는 것입니다. 곧 상전들이 자기 위에 있는 상전이 계심을 알면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현대적으로 보면 여러분이 종업원으로 일하시거나 사장으로 일하시거나 그 위치나 신분과 상관없이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오직 여전히 성령의 충만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성령의 충만함을 통해 내 속에 있는 아담이 사라지고 예수님이 충만하여 살아 역사 하실 때 세상에 나가서 어떤 관계 속에서든 예수님의 향기와 냄새가 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에서 가장 훌륭한 사장과 종업원의 관계가 누구와 누구의 관계인지 아십니까? 룻기에 등장하는 보아스와 그의 메니저와의 관계입니다.

보아스는 항상 자기의 보리밭의 일군들을 만나면 첫인사가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 기를 원하노라(2:4)라고 합니다. 그러면 일군들은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니 이다 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떤 모습이예요? 성령충만한 사장의 모습이요, 성령충만한 종업원의 모습인 것입니다. 사실 한 사람이 성령으로 충만하면 집에서는 성령충만한 남편이 되는 것이고, 사회에서도 성령충만한 사장이 되고, 직원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이 충만하면 모든 관계 에 예수님이 나타나셔 중재하게 되시는 것입니다. 바로 그 곳에 세상이 줄 수 없는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삶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놀라운 성령충만, 예수충만의 삶이 상속자로 완성되는 그 날까지 저와 여러분 삶 가운데 넘쳐 나기를 간절히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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