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November 21, 2014

NOV. 9. 14. 주일강단 : EPH SERIES 10 충만하여 삽시다!

KM과 EM이 함께하는 에베소서 강해시리즈 10




                            충만하여 삽시다!
                           
                                     엡5:1533

예전에 어느 가정과 함께 델라웨어에 있는 바닷가로 캠핑을 간적이 있습니다. 바닷가 소나 무 숲아래 있는 아름다운 캠핑장이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늘의 별을 세고, 바닷가에서 낚시도 하고, 소라와 조개도 잡았습니다. 얼마나 즐거운 시간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던 중 한 밤이 되었습니다. 불을 끄면 암흑 그 자체의 밤이었습니다. 여자분들은 다른 곳으로 산책을 가고 남자들은 장작불 주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갑자기 “저기를 보라는 탄성이 들렸습니다. 몸을 돌리는 순간 상상할 수도 없는 광경이 순식간에 펼쳐졌습니다. 초록색과 녹색, 붉은색과 보라색, 무어라고 형언 할 수 없는 아름다운 광채가 우리 일행 주위를 너무 나도 가깝게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이처럼 놀랍고 아름다운 광경을 우리 남자들만 보게되서 너무 아쉬었습니다. 그런데 자매 들이 달려오면서 방금 그것을 보았느냐며 자신들만 보았을까봐 너무 안타까워 달려 왔다고 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다가 온 평생 잊지 못할 광경이었습니다. 저는 이제까지 살면서 그처럼 가까이 지나가는 별똥별을 본적이 없습니다. 저 하늘에 하얀선을 그리는 별똥별은 보았서도 이처럼 가깝게 본 것이 처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에베소서를 통해 사실 이런 별똥별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영적 하늘의 찬란한 광채가 우리 심령과 삶을 관통하여 지나가고 있음을 보고 있습니다. 부족한 종이 제대로 전하지 못해서 이 광대하고 놀랍고 찬란한 보석과 같은 말씀들을 제대로 증거하지 못해 죄송할 따름입니다. 어떻게 보면 바울은 그 모든 것을 보았고 그것을 에베소서로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그 별이 지나가는데 끝 부분을 보여주는 것과 같습니다. 별똥별은 스쳐 지나가지만 에베소서는 언제나 저와 여러분 앞에 있습니다. 얼마나 영광스러운지 모릅니다. 이 놀라운 말씀을 날마다 심령에 새기고 살아가시길 축원합니다. 이제 우리는 에베소서의 결론 부분으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에베소서를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이미 만세 전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우리를 택하셨고, 부르셨고, 상속자로 삼으셨고, 그리스도를 닮아 가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은 완전한 예수님의 형상과 성품을 갖은 그리고 신령한 부활의 몸을 갖게 하심으로 영원한 상속의 삶을 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 곧 교회로 하여금 온 세상 만물을 다스리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어떤 존재였던 우리를요? 어둠이요,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들을 말입니다. 누구안에서요? 그리스도에서 안에서요. 무엇으로 말미암아요? 그리 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말입니다. 십자가에서 함께 죽고, 부활로 함께 살며, 승천으로 함께 하늘 우편에 앉히시사 자기의 형제, 공동 상속자로 세우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역사란 무엇이냐?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이 이루어지고 있는 삶이 곧 역사인 것입니다. 그야말로 그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에베소서의 전체 계시가운데 하나님께 서 바울을 통해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으신 말씀이 무엇일까요? 오늘 바로 그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1. 그러면 이제 어떻게 행하며 살 것인가?

15절을 보세요.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 는 자 같이 하여 

, 바울은 진리는 반드시 삶을 변화시킬 수 밖에 없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곧 예수님을 만나면 변화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새롭게 살려는 마음과 생각을 할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더욱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래요? 성화의 과정은 여전히 죄와의 치열한 싸움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즉이처럼 놀라운 존재인 너희 성도가 이제 남은 삶을 상속자로 온전히 세워지는 그 날까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롭게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말씀하는 것이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고 합니다. 시간도 없고 때도 악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롭게 생각해서 성도다운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세월을 아끼라는 말은 엑사고라조메노이 톤 카이론이란 말인데 원뜻을 그대로 번역하면 시간을 다시 사라”(Redeeming the time)라는 말이예요. 여기서 세월이란 말이 카이로스입니다. 일반적으로 카이로스는 하나님의 시간을 말해요. 신약 성경에서 시간이란 단어로 카이로스크로노스를 사용하는데 크로노스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물리적 시간을 말해요. 그런데 카이로스는 그리스의 신화에 나오는 신의 이름에서 온 말인데 그 모습이 독특해요. 앞머리는 길게 기르고 뒷 머리는 대머리인데 어깨와 발꿈치에 날개가 달려 있어요. 그래서 긴 앞머리를 붙잡지 못하면 순식간에 빨리 지나가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카이로스는 물리적 시간이 아닌 기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바울이 기회를 다시 사라는 것은 이제까지는 어둠 속에서 시간을 덧없이 보냈지만 이제 하나님의 상속자가 된 다음에는 상속자답게, 성도답게, 남은 기회를 다시 찾았으니 하나님을 위해 사는 특별한 기회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때가 악하다고 합니다. 여러분! 보세요. 우리가 살고 있는 세대가 날들이 얼마나 악합니까? 그러므로 이제 성도는 이 땅에서 사는 동안 하나님이 주신 기회들과 날들을 더 이상 낭비하지 말고 지혜롭게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17절에 이렇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이제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로서 가장 지혜로운 삶은 내 뜻대로 사는 삶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사실 가장 어리석은 자가 누구 입니까? 우주 만물의 왕이요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신이 하나님 자리에 앉아 자신의 뜻대로 사는 자가 어리석은 자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탄이 에덴에서부터 이제까지 아니 마지막 재림때까지 인간에게 계속해서 속삭이고 속이는 것이 무엇인지 아세요? 그것은 인간 너 자신이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너 자신이 왕이라는 것입니다. 너 자신이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사탄은 절대로 자신을 섬기라고 하지 않습 니다. 그 대신 인간 너 자신이 바로 신이요, 주인이라고 부추킵니다. 수 많은 지식인들, 수 많은 세상의 리더들, 수 많은 백성들이 다 여기에 속는 것입니다.

그러면 정말 인간이 주인입니까? 인간이 하나님입니까? 인간이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까? 아니예요. 인간은 관리자일 뿐이예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것, 그 시간, 그 기회에 살고 있을 뿐이예요. 그런데 그 시간, 그 기회에 자신이 마치 주인인 것처럼 착각하며 하나님을 내쫓고 사는 것이예요. 그래서 수많은 시간과 기회를 허랑방탕하고 잃어버리고 사는 것이예요. 그렇게 인간이 주인되어 산 결과는 무엇이어요? 그 길의 결국은 패망이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그 죽음 뒤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고 하셨어요. 그 때 다 드러나는 것이예요. 누가 주인이고 누가 메니저였는지.  

그래서 이제 다시 기회를 주시는 것이예요. 청지기로서 관리자로서 상속자로서 다시 주어진 시간, 기회를 다시 살아라. 그리고 내가 올 때 각 사람에게 줄 상을 가져오겠다고 하신 것입니다.(22:12) 그러니 내가 누구인지 바로 알고 남은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얼마나 복이요 은혜인지 아셔야합니다. 이 은혜와 복이 넘치는 삶이 되시길 간절히 축원 합니다.

2.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고 하셨는데 그러면 주의 뜻이 무엇입니까? 바로 18절입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이것이 이 시대에 다시 기회를 얻어 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먼저 술 취하지 말라로 하셨어요. 여기서 술과 방탕은 어둠과 죄와 허물 가운데 살던 옛사람의 삶의 대표적 모습입니다. 술은 마시면 취하게 되어 있습니다. 술에 취하면 사람은 고귀한 품성을 잃고, 지각에 혼돈이 오면서 분별을 잃어 버립니다. 술에 취한면 또 다른 방탕한 것을 찾게 됩니 다. 그리고 그 뒤에 오는 것은 허망과 허탈 뿐입니다.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 서 잠언에서 술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세요.“재앙이 뉘게 있느뇨 근심이 뉘게 있느뇨 분쟁이 뉘게 있느뇨 원망이 뉘게 있느뇨 까닭없는 상처가 뉘게 있느뇨 붉은 눈이 뉘게 있느뇨?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 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 그것이 마침내 너를 뱀 같이 물것이요 독사같이 쏠 것이며 또 네 눈에 괴이한 것이 보일 것이요 네 마음은 구부러진 말을 할 것이며 너는 바다에서 누운 자 같을 것이며 네가 스스로 말하기를 사람이 나를 때려도 나는 아프지 아니하고 나를 상하게 하여도 내게 감각 이 없도다 내가 언제나 깰까 다시 술을 찾겠다 하리라(23:2935)

에베소서에서 술 취함은 옛사람으로 어둠 가운데 살 때에 세상의 대표적인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제 주 안에서 새 사람이 된 자들은 더 이상 술에 취해 방탕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세상과 전혀 다른 하나님 나라에서는 새로운 것에 취해야 하는데 그것이 무엇입니까?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하세요. 곧 성령에 취하라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께 사로잡혀 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는 것은 명령형 이면서 반복형으로 계속해서 받으라는 것입니다. 선택이 아니라 필수에요. 반드시 성도는 새로운 삶을 위해서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 는 이 말씀은 이미 무엇을 전제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성령의 충만함을 사모하면 그렇게 해 주시겠다는 약속이 전제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둠에서 빛으로, 죄의 종에서 하나님의 상속자로 살아가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오직 성령의 충만함인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이 충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경 에 나타나는 성령의 충만함은 믿음으로 찬양과 회개와 간구 가운데 사모하며 나아갈 때 임하시는 은혜입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 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시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 느냐 하시니라(11:913)     

전심으로 성령을 사모하는 자에게 반드시 충만함으로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 말씀 붙잡고 간구하세요. 기도하세요. 하나님의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실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을 사로잡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에 사로 잡혀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성령이 충만하면 어떤 역사가 나타납니까? 19절 이하를 보세요.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께 감사하며 / 그리스도를 경외 함으로 / 피차 복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 충만함의 모습이예요.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충만은 우리를 시인으로 만듭니다. 무슨 시인이요? 하나님을 노래하는 시인이요, 작사자요, 작곡가로 만듭니다. 그리고 얼굴이 환하게 변합니다. 항상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감사가 넘칩니다. 주님을 경외하며 서로 복종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성령충만의 은혜가 날마다 넘쳐 흐르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3.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라!

그러면 이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것임을 분명히 알았는데 이것을 다르게 말씀드리면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충만함으로 전혀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이 펼쳐진다는 것입 니다. 그러면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어디서 부터 시작해야 새로 운 삶이 되는 것입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가장 가까운 인간 관계에서 부터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합니다. 인생에 있어 가장 가까운 관계가 무엇입니까? 부부 관계입니다. 부부는 인간 관계중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가정제도를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가장 귀한 사이에도 죄가 들어오면  관계가 깨지고 상처나고 아프고 분리됩니다. 그래서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지 않고, 아내는 남편을 인정하지도 존경 하지도 않게 됩니다. 그 결과 얼마나 많은 가정이, 얼마나 많은 자녀들이 아픔 속에서 살아 가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보세요.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고, 빛이 되고, 상속자가 된 우리는 어디로부터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입니까? 바로 가장 가까운 부부 관계에서부터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쉽지 않아요. 그래서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한 남편, 성령 충만한 아내만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유지하고 완성하는 유일한 키입니다. 이것 아니면 어려워요. 그래서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임을 명백히 말씀하시고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이제부터, 가정에서부터, 부부사이에서 부터 새로운 삶을 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내가 성령충만하면 어떻게 변화됩니까? 남편을 대하는 마음과 태도부터 새로 와집니다. 미웠던 남편이 사랑스러워집니다. 안쓰럽게 여겨집니다. 냉냉한 마음에 순풍이 붑니다. 더 나아가 성령 충만한 아내는 자기 남편에게 복종합니다. 여기서의 복종은 맹목 적인 복종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존경과 경의와 사랑의 순복입니다. 자발적인 섬김 입니다. 남편을 가정의 머리로 인정하고 존중 합니다. 바울은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복종 하듯이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한다고 했습니다. 남편의 영적 리더십이 세워지길 사모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편을 세우는 돕는 배필이 됩니다.

남편이 성령충만하면 어떻게 변화됩니까? 아내를 더욱 사랑합니다. 다른데 눈길을 주지 않습니다. 딴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내의 머리라고 해서 군림하지 않습니다. 폭력과 폭언을 행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머리되신 그리스도께서 몸 된 교회인 우리를 위해 자신을 버리신 것처럼 아내를 위해 그렇게 자신을 다 줍니다. 오직 아내만을 사랑하는 아내바라기가 됩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미워하지 않고 양육하고 보호하시는 것처럼 아내와 가정을 사랑하고 양육하고 보호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충만하다고 하면서 아내를 미워하거나 남편을 존경하지 않으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성령충만할수록 사랑하는 마음과 존경하는 마음이 우리를 지배합니다. 강제적인 것이 아니 라 자발적인 섬김이 나타납니다. 31절을 보세요.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성령이 충만하면 창조의 질서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창조의 비밀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 그 비밀과 질서 속에서 세상이 줄 수 없는 새로운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게 됩니다. 예전에는 남편도 아내도 상대방이 변화되기를 원했지만 이제는 자신이 변화됩니다. 자신이 제 자리로 돌아갑니다. 자신이 먼저 화해와 용서의 손을 내밉니다. 버티던 자존심을 성령께 굴복 시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과 행복을 되찾는 것입니다. 가정 이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최근에 우리 교회의 가정들이 식탁가정예배를 드리면서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 아내는 그동안 남편에 대한 인정과 존경이 별로 없어 우울하기까지 했는데 이제는 남편이 가정의 영적 제사장이 되어 예배를 섬기는 모습을 볼 때 남편을 존경하고 더욱 사랑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남편은 식탁가정예배를 위해 청소를 하고 식탁에 앉는 순간 성령께서 함께 하심을 너무나 가깝게 느낀다고 고백합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결국 성령충만한 남편과 아내는 그 복을 자녀에게 흘려 넘치게 합니다. 손자 손녀에게 흘려 넘치게 합니다. 3대 신앙의 명가가 됩니다. 이 천국의 맛을 받아 그리스도안에서 가정에서 새로운 삶을 누리는 우리 모든 성도들이 되시길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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