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하여 삽시다
엡6:10∼24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아울러 우리 공동체는 에베소서의 마지막 메시지에 이르는 날 입니다. 얼핏보면 에베소서와 추수감사주일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아요. 그동안 에베소서의
말씀을 따라 깊이 묵상해 보면 추수감사주일이 더욱 의미있게 다가옵니다.
왜 그렇습니까? 신앙의 자유를 찾아 온 청교도들이 하나님의 공동상속자로서 그의 나라에 이르기까지의 핍박과 환란, 자유와 모험, 추위와 배고픔, 먼저 간 가족과 살아 남은 가족, 파란만장한 역경속에서 인디언을 초대해 함께 한 첫 수확의 감사의 예배가 바로 추수감사 주일의 기원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청교도들의 신앙의 순례 곧 옛사람에서 새사람으로 변화되어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역사를 이루며 살아간 모든 여정이 다 그 가운데 있습니다. 이 청교도들의 신앙의 여정이 바로 저와 여러분의 신앙의 여정과 동일합니다. 다를 바가 없습니다. 에베소서의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대가 다르고 상황이 다르지만 이 땅의 하나님의 백성의 신앙의 순례는 똑같습니다.
청교도들의 추수감사절은 가장 혹독한 추위와 질병 그리고 고통속에서 지킨 위대한 신앙의 승리요 전통입니다.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더욱 감사한 위대한 신앙의 영웅들의 고백 입니다. 이 동일한 은혜와 감사가 우리에게도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 공동체가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는 것은 너무나도 놀랍고 놀라운 일입 니다. 작년 추수감사주일에 우리가 오늘과 같은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입니다. 우리 옆에 계신 분들과 함께 인사하기 원합니다. 주님의 은혜 감사합니다. 해피 땡스기빙, 축하합니다. 축복합니다. 오늘 에베 소서는 마지막 결론에 이릅니다. 바울은 매우 힘있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러면 에베소서의 결론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왜 그렇습니까? 신앙의 자유를 찾아 온 청교도들이 하나님의 공동상속자로서 그의 나라에 이르기까지의 핍박과 환란, 자유와 모험, 추위와 배고픔, 먼저 간 가족과 살아 남은 가족, 파란만장한 역경속에서 인디언을 초대해 함께 한 첫 수확의 감사의 예배가 바로 추수감사 주일의 기원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청교도들의 신앙의 순례 곧 옛사람에서 새사람으로 변화되어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역사를 이루며 살아간 모든 여정이 다 그 가운데 있습니다. 이 청교도들의 신앙의 여정이 바로 저와 여러분의 신앙의 여정과 동일합니다. 다를 바가 없습니다. 에베소서의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대가 다르고 상황이 다르지만 이 땅의 하나님의 백성의 신앙의 순례는 똑같습니다.
청교도들의 추수감사절은 가장 혹독한 추위와 질병 그리고 고통속에서 지킨 위대한 신앙의 승리요 전통입니다.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더욱 감사한 위대한 신앙의 영웅들의 고백 입니다. 이 동일한 은혜와 감사가 우리에게도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 공동체가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는 것은 너무나도 놀랍고 놀라운 일입 니다. 작년 추수감사주일에 우리가 오늘과 같은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입니다. 우리 옆에 계신 분들과 함께 인사하기 원합니다. 주님의 은혜 감사합니다. 해피 땡스기빙, 축하합니다. 축복합니다. 오늘 에베 소서는 마지막 결론에 이릅니다. 바울은 매우 힘있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러면 에베소서의 결론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1. 강건하여져라
10절을 보세요.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여기서 “끝으로”는 “마지막으로”이런 말입니다. 바울이 마지막으로 남기는 말이란 것입 니다.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보세요.“강건하여지라”고 합니다. 이 말은 “엔뒤나모오” 란 말인데“강하게 되라”는 수동형이예요. 하나님의 상속자로 구원의 경주를 끝마치는 날까지, 교회가 만물을 다스리는 그 날까지 강건해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강건해지라고 하십니까?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해지라고 하십니다.
바울은 이미 1:19절에서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고 기도했는데 바로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해져야 한다는 것이예요. 똑같은 구절을 사용해서 명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교회, 성도가 강건해질 수 있는 유일한 원천이 무엇입니까? 오직 예수 안에 있는 그 힘의 능력인 것입니다. 다른 것으로 안됩니다. 오직 예수님의 능력만이 우리의 힘이 되어야 합니다. 만약 교회가 주 안에서와 그의 능력으로 강건해지는 것보다 사람의 수나, 헌금의 수나, 건물이나 그 외에 다른 것으로 강건해지려고 한다면 그것은 다 속는 것입니다. 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을 강건케 하는 것은 오직 예수와 그의 능력이 되어야만 합니다. 다르게 말씀드리면 우리 교회나 성도는 얼마든지 예수와 그의 능력으로 강건해 져야하고 강건해 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강건해지라고 하세요? 우리에게 대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대적과 싸워야하기 때문에 강건해져야 하는데 우리 힘으로는 져요. 상대가 안돼요. 그래서 예수님과 그 힘의 능력으로 강해져야만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와 성도의 대적은 크게 두가지가 있습니다.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첫째 대적은 계속해서 우리가 말해왔듯이 내 안에 있는 대적입니다. 아담 곧 죄성입니다. 둘째 대적은 내 밖에 있는 곧 사탄과 그의 세력입니다.
이처럼 우리 안밖에 있는 대적들과 싸워서 이기는 유일한 길은 예수님과 그 힘의 능력으로 강해지는 것이고,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곧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에베소서에서 가르치는 두 대적과 싸워 이기는 비결입니다. 다른 것으로는 안됩니다.
그래서 성경이 이 싸움을 위해 어떻게 준비하라고 하십니까?
2. 전신갑주를 입으라
11절을 보세요.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하십 니다. 마귀의 간계는 “메도데이아”로 “술책, 속임, 사기, 교활”을 의미해요. 그러니까 마귀는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를 온갖 교활함으로 공격하는 것입니다. 그것에 맞서 이기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전신갑주인 것입니다. 나의 전신갑주 가 아니예요. 곧 인간의 힘, 인간의 지혜, 인간의 능력이 아녜요. 오직 하나님의 옷을 입어야 해요. 그 옷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무장해야 해요. 그것이 바로 예수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인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 영과 마음과 삶에 무장해야 마귀의 간계로 부터 승리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 밖에 있는 영적 싸움의 대상을 구체적으로 분명하게 알려 주세요. 그들이 누구입니까? 계속해서 12절을 보세요.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 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을 상대함이라
이들이 바로 마귀의 간계를 이 땅에서 수행하는 자들입니다. 여전히 공중권세를 잡고 있는 사탄의 세력들과 성 삼위 하나님과 그 교회가 영적전쟁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미 그리스도께서 성육신과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을 통해서 승리하셨고 이제 다시 심판의 주로 오시면 이 전쟁을 끝날 것입니다. 바로 그 날까지 이미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힘의 능력으로 교회가 전신갑주를 입고 서서 마귀와 그의 세력들을 대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곧 승리를 쟁취하라는 것이 아니라 승리를 지키라는 것입니다.
다윗을 보세요. 그가 골리앗과 싸워 승리할 수 있었던 것 중에 매우 중요한 요소가 바로 싸움의 대상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아버지 심부름으로 전쟁터에 나갔을 때 하나님의 군대는 골리앗 앞에서 벌벌 떨고 있었어요. 소년 다윗이 골리앗과 싸워 이긴 자에게 무슨 상이 있는지 듣고 있을 때 그의 장형이 봅니다. 그의 장형 엘리압은 다윗을 공격합니다. 다윗을 대적으로 여깁니다. 왜요? 자기의 기름부음 곧 왕이 됨을 빼앗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다윗이 교만하고 전쟁을 구경하러 왔다고 비난을 해요. 그러나 다윗은 형을 상대하지 않아요. 왜 이유가 없겠습니까? 하고 돌아서요. 더 이상 그와 상대하지 안해요.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다윗은 대적은 골리앗이지 엘리압이 아니예요. 다윗은 이것을 간파하고 있었어요. 만약 다윗이 엘리압의 시비에 넘어지고 거기서 싸우고 큰 소리를 냈다면 그는 이미 사울의 군사들에 의해 전쟁터에서 쫓겨났을 것이예요. 골리앗과는 싸워보지도 못하고 지고 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얼마나 우리가 속는지 몰라요. 우리의 대적은 사탄과 그 악한 영들인데 우리는 혈과 육을 대적으로 알아요. 그래서 교회 안에서도 성도가 대적이 돼요. 내 의견과 다르면 대적이 돼요.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예요. 남편이 아내를 아내가 남편을 대적으로 여기면 그 가정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우리의 형제요 자매입니다. 그들과 싸우면 안됩니다. 그러면 마귀와는 싸워보지도 못하고 스스로 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적을 분명히 아는 성도는, 교회는 속지 않습니다. 눈물로 기도합니다. 사랑으로 감쌉니다. 하나님께 엎드려 간구합니다. 무엇을요? 우리 사이에서 이간질하고 교활하고 속임수로 나뉘 게 하고 분리케 하는 사탄과 그의 간계가 물러나게 해 달라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곧 예수 안에서 그의 힘의 능력으로 물리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고 하십니다.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인 하나님의 전신갑주는 무엇을 말합니까? 14절을 보세요.
먼저 그런즉 서서 라고 하셨어요. 무엇을 말씀하세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을 준비를 하라는 것이지요. 군사는 무엇보다 군사다운 태도와 자세가 중요합니다. 이 말씀은 이미 대적과 싸워 승리하신 대장되신 예수 옆에 우리 하나님의 교회가 서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갖추고 전열을 갖추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본문에서 좀 오해하는 것 중 하나가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하시니까 당시 로마의 군사들을 떠올리는 경향이 있어요. 바울이 아마 군사들을 보고 그러지 않았을까? 그런 부분도 있겠지만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합니다.
이사야 59장 17절
공의를 갑옷 삼으시며 구원을 자기의 머리에 써서 투구로 삼으시며 보복을 속옷으로 삼으시며 열심을 입어 겉옷으로 삼으시고
이사야 11장 5절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
요한계시록 19장 11절∼16절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여 싸우더라 그 눈을 불꽃 같고 그 머리에는 많은 관들이 있고 또 이름 쓴 것 하나가 있으니 자기 밖에 아는 자가 없고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이것이 구약과 신약에 등장하는 하나님 전신갑주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중요한 내용이 공의의 갑옷, 구원의 투구, 공의와 성실의 띠, 예리한 검입니다. 바울이 성령의 감동으로 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좀더 구체적으로 그리며 우리 곧 교회가 이 갑옷을 몸에 갖추어 입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개인적 적용도 중요하지만 더욱 교회 차원의 군대가 되어야 함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6가지의 갑주를 말합니다.
(1)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 허리 띠는 옷을 몸에 밀착시킴으로 모든 갑주가 몸에 일치되게 해 줍니다. 그러므로 진리가 그런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진리와 그에 따른 진실, 성실함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2)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 호심경은 가슴을 막는 흉갑, 흉배라고 하는데 가슴 곧 심 장을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무엇으로요? 의는 “디카이오쉬네”로 “공정,정의, 공의,정직”을 말합니다. 곧 공의로움과 정의로움이 교회를 보호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공의와 정의가 넘쳐야 합니다.
(3)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 신은 갑주 중애서도 얼마나 중요합니까? 신이 없다면 어떻게 대적과 싸울수 있을까요? 신이 발에 맞어야만 합니다. 그래야 편안하고 가벼워요. 자유함 가운데 걸을수도 뛸수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평안의 복음이 예비해준 평강이 교회 안에 넘쳐야 하는 것입니다.
(4)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 허리 띠나 가슴 흉배나 신은 각 몸의 부분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면 이 모든 것 위에 절실히 필요한 것이 자유 자재로 대적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방패입니다. 방패는 위 아래 사방에서 어느 곳에서든지 대적 이 공격해도 막을 수 있는 전천후 보호가 가능합니다. 그래서 이로써 능히 악한 자 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라고 하신 것입니다. 믿음의 방패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시겠지요?
(5) 구원의 투구 – 투구는 머리에 쓰는 것으로 머리가 노출되면 치명적입니다. 그러므 로 머리를 보호하는 투구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것이 바로 구원의 투구 입니다. 교회는 무엇보다도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진리와 역사가 가장 중요한 것 입니다. 그러므로 늘 구원의 진리를 사수하고 구원의 역사가 나타나야 합니다.
(6) 성령의 검 – 6개의 하나님의 전신갑주 중에서 유일한 공격용 무기입니다. 다섯 가지는 전부 방어용이요, 보호용입니다. 그런데 유일한 성령의 검이 우리 교회의 무기인 것입니다. 이 성령의 검이 무엇이라고 하셨어요?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때 이 말씀은 “레마”입니다. 말씀에는 ” 로고스”와 “레마”가 있어요. 쉽게 말씀드리면 로고스는 객관적인 하나님의 말씀 이고, 레마는 주관적인 하나님의 말씀이예요. 곧 객관적인 말씀이 주관적으로 교회 안에 살아 역사하는 것을 말해요. 곧 성경이 교회의 성령의 검으로 무기화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세요. 예수님 시대에 구약 성경은 로고스입니다. 그런데 금식후 사탄에 공격해 올때 세 번의 말씀으로 물리치세요. 이것이 레마요, 성령의 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평상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지켜, 행해야만 사탄이 공격할 때 그 말씀이 내 심령안에서 살아 역사하는 레마가 되어 그 말씀 으로 대적을 물리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와 성도의 유일한 무기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철저히 준비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제자훈련을 통해 레마를 준비해야 하는 것이예요.
사랑하는 여러분!
이 6가지가 교회가 서서 입어야 하는 하나님의 전신갑주입니다. 진리와 의와 평안의 복음과 믿음과 구원과 성령의 검으로 완전 무장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대적과 맞서 싸울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온전히 무장되는 우리 교회와 성 도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되시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3. 항상 성령안에서 기도하라
그런데 성경은 전신갑주를 입는 것으로 다 끝난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18절을 보세요.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이 6가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더욱 빛나고 튼튼하게 하고, 성령의 검을 더욱 날카롭게 갈아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기도입니다. 이 한 구절에 기도하라는 말씀이 5번이나 등장합니다. 곧 전신갑주와 기도와의 관계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 진리와 의와 평안의 복음과 믿음과 구원과 성령의 검으로 더욱 무장되어 지는 것입니다. 마치 기도는 군사들의 함성과 같아요. 함성소리가 크면 클수록 사기가 오르고 대적과 싸울 용기가 생기듯이 기도는 그렇게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은 교회의 속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도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하면서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해 달라고 도고를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19) 바울은 특히 기도의 필수적인 대전제는 항상 성령 안에서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는 교회가 이처럼 대장되신 예수님 곁에 서서 이미 승리하신 도성을 지키는 무장된 군대가 되기를 날마다 때마다 성령 안에서 무시로 깨어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윗을 보세요. 그가 누구와 대적하여 싸웁니까? 골리앗입니다. 당시 골리앗은 완전무장을 했습니다. 최고의 무기를 다 가졌습니다. 그가 40주야를 하나님의 군대를 조롱합니다. 사울도 다윗의 세 형도 그 누구도 이 골리앗을 대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소년 다윗은 단지 물맷돌 5개를 갖고 나갑니다. 싸움이 안되는 것이지요. 누구보아도 말이 안되지요. 그러나 영안을 열어보면 다윗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완전무장을 한 것입니다. 그는 진리의 허리 띠를 둘렀습니다. 의의 흉배를 찼습니다. 거인앞에서도 평안의 복음의 신을 신었습 니다. 믿음의 방패를 돌립니다. 구원의 투구를 쓰고, 성령의 검으로 물맷돌을 던지는 것입 니다. 누가 이겼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바울은 사랑하는 형제 두기고 편에 이 놀라운 에베소서를 전달한다고 하면서 이 위대한 하나님의 서신을 마칩니다. 이제 우리의 에베소서 여행도 마치지만 오히려 이제부터 더욱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고, 우리 주 예수안에서 그의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며,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어 대적과 맞서며, 부르심의 소망을 향해 순례의 행진을 하여 그리스도의 공동 상속자로 서는 그날까지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역사가 넘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