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March 2, 2014

MAR. 2. LWC 주일설교 : 하나님 외에는 없습니다 (호13:1∼11)

최근 한국 드라마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이 하나있습니다. 정도전입니다. 지금으로부터 6백여년 전인 14세기 후반 정도전과 이성계가 타락한 고려를 역사의 뒤안 길로 보내고 조선왕조를 태동시키는 내용입니다. 당시 권세를 가진 자들은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권력을 이용하고, 백성은 가난과 절망 가운데 빠져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대의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추구하던 정도전과 수많은 외적으로부터 고려를 지켰던 용장이요 덕장인 이성계가 함께 역사의 새 장을 엽니다. 그 시대에 또 한 사람이 있는데 그는 정몽주입니다. 정도전과 막역지간의 친구사이입니다. 정몽주는 어떻게 하든 고려를 살리려는 사람이었다면 정도전은 10년간의 유배와 유랑을 통해 권력의 타락과 백성의 도탄을 깨닫고 새로운 왕조를 통해 새 세상을 꿈 꾼 사람입니다
  
이처럼 한 왕조 더 나아가 한 나라가 패망의 길로 들어설 때에는 여러 증후들이 나타납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증후가 기득권을 갖은 소수에 의해 권력이 사유화 되는 것입니다. 공적개념이 무뎌지고 공직자들은 봉사 정신을 상실하고 오히려 군림하여 탐욕의 배를 채웁니다. 그리고 백성들은 도탄에 빠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패상은 거창하게 한 나라, 한 왕조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기업에서도, 기관에서도, 심지어 거룩한 교회에서도 일어납니다. 개인도 마찬가지 입니다. 왜 이러한 부패가 일어납니까? 죄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이 죄와 싸우지 않으면 우리는 타락할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속에서 날마다 우리의 영혼과 육신이 정결케 되어 자유케 되는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북이스라엘이 타락하여 멸망하기 직전의 사건입니다. 이처럼 타락의 증후가 나타나면 두 가지 선택이 앞에 놓이게 됩니다. 하나는 계속 그 상태를 덮어두고 갈 것인지, 아니면 개혁하여 고치던지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기득권 세력은 조용히 덮으려 하고, 개혁자들은 고치려 하는 것이기에 당연히 갈등이 일어납니다. 따라서 어디서든 조용한 개혁은 없습니다. 사실 조용한 개혁은 거짓입니다. 개혁은 REFORM 하는 것인데, 잘못되고 비뚤어진 틀을 다시 바꾸고, 바로 잡는 것인데 어떻게 조용히 아무 소리없이 개혁이 되겠습니까?

오늘 호세아 선지자는 북이스라엘의 개혁자로 자기 민족의 살 길을 외치고 있습니다. 여러분! 놀랍게도 성경은 온통 개혁의 소리로 가득합니다. 성경이 진리인 것은 시끄럽다고 덮어두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조용해서 좋을 것 같은데 그렇게 안하십니다. 왜 그런줄 아세요? 그대로 두면 죽기 때문입니다.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라 (12:51) 고 하셨습니다. 왜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오지 않으셨다고 해요? 세상이 부패했는데 화평을 외치면서 죄를 덮어버리면 그러면 세상을 구원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화평이라는 것은 죄와 거짓 아래서는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화평은 오직 공의와 인자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먼저 공의와 인자의 세상을 만드시고 더불어 그 위에 화평을 주십니다. 이것이 구속의 역사입니다.

놀랍게도 오늘 본문이 왜 인간은 그렇게 타락하여 부패할 수 밖에 없는 존재인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그 문제의 해결책이 무엇인지도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1. 왜 인간은 타락하는가? (13)

1절을 보세요.

에브라임이 말을 하면 사람들이 떨었도다 그가 이스라엘 중에서 자기를 높이더니 바알로 말미암아 범죄하므로 망하였거늘

여기 에브라임이 중요합니다. 에브라임은 북 이스라엘 열지파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그 지파의 명성이 대단했습니다. ‘에브라임이 말을 하면 사람들이 떨었다고 했습니다. 사실 에브라임은 북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지파였어요. 우리가 평양하면 북한을 대표하는 것과 같아요. 그러면 에브라임 이 왜 이렇게 대단한 지파가 되었습니까?

야곱의 12아들 가운데 리더는 요셉입니다. 장자가 르우벤이지만 그는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힌 죄로 장자의 명분을 잃어요, 그것이 요셉에게 간 것입니다. 요셉이 육적 장자의 명분을 받은 것이예요. 물론 영적 장자의 명분은 유다에게 있어요. 유다에게서 예수님이 오시기 때문입니다.(대상5) 이 육적 장자의 명분을 갖은 요셉을 통해 열 두 아들이 애굽에서 구원받고 결국 이백만이 출애굽을 합니다. 야곱이 늙어 죽게 되었을 때 요셉이 자신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데리고 들어갔는데 야곱이 손을 엇대어 장남 므낫세보다는 차남 에브라임을 더욱 축복합니다. 요셉은 기뻐하지 않았지만 야곱은 나도 안다’, ‘나도 안다고 하면서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의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고 예언을 합니다. 바로 이 예언대로 에브라임은 북 이스라엘의 권력을 갖습니다. 어떻게 보면 요셉의 장자의 명분의 복이 에브라임에게 흘러 내려온 것이지요. 요셉 가문의 영광이 에브라임입니다. 가나안을 정복한 여호수아도 에브라임 지파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에브라임하면 북 이스라엘 전체를 대표해서 말씀할 때가 많아요. 지난 번에 말씀드린 기드온의 300용사가 전쟁에서 승리 하고 적을 추적할 때 에브라임이 자기들을 부르지 않았다고 해서 크게 다툽니다. 그 때 기드온이 너희의 끝물 포도가 우리의 맏물포도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한 일이 너희가 이제까지 한 일과 어찌 비교가 되겠느냐?’ 이런 식으로 말해서 가까스로 무마하는 사건이 나와요.(8) 전형적인 기득권 세력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런 에브라임이 호세아 선지자 시대 곧 북이스라엘이 멸망할 시기에 와서는 말을 하면 사람들이 떨었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가 이스라엘 중에서 자기를 높였다고 했습니다. 더 나아가 바알을 섬겼습니다. 2절에는 이제도 자기를 위하여 은으로 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제사를 드리는 자가 송아지와 입을 맞추게 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예언과 축복을 받은 이 에브라임 지파가 왜 이렇게 타락합니까? 영적, 육적으로 자기 관리에서 철저하게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장자의 명분의 복이 오히려 독이 된 것입니다한마디로 말씀드리면 장자의 명분과 권력과 물질이 어우러져서 자기를 높이더니’, ‘자기를 위하여이런 수식어를 갖게 됩니다. 곧 자기가 우상이 되는 교만으로 인해 타락한 것입니다. 자신들이 볼 때는 아직도 자기의 말에 사람들이 떨고 무엇인가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3절을 보세요.

이러므로 그들은 아침 구름 같으며 쉬 사라지는 이슬 같으며 타작 마당에서 광풍에 날리는 쭉정이 같으며 굴뚝에서 나가는 연기 같으리라

이처럼 귀하게 복 받은 자가 에브라임이었는데 그 끝이 이렇게 불행해지는 것은 타락했을 뿐아니라 끝까지 돌이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죄와 타락의 특징이 무엇인지 아세요? 자신도 모르게 온다는 것입니다. 점점 그것이 자기의 몸에 익숙해지기 때문에 눈치를 못채는 것입니다. 후에는 죄와 타락이 곧 자신과 일체가 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모릅니다그러므로 이 본문을 읽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너희도 이것을 반면교사로 삼아, 본을 받아 늘 깨어 있고, 기도하며, 죄와 타락으로 부터 민감하게 자신을 지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아무도 예외가 없는 것입니다. 늘 자기 자신을 말씀과 성령안에서 정결케 하므로 승리의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2.  누가 왕인가?

사실 문제의 핵심은 누가 왕인가?’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이 문제를 매우 심각하게 다루십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본질적 관계를 설정하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기 때문 이예요. 아담은 이 원칙을 깼고, 그 후손인 우리도 이 원칙을 깨뜨림으로 하나님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 원죄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서는 사실 매시대의 인간들에게 이 기본적인 원칙을 사실 구차할 정도로 재설정하시는 수고를 하셔야만 하는 것입니다. 일일이 가르치지 않으면 여전히 자신이 왕인 줄 알고, 기고만장하여 교만 가운데 살다가 패망에 처할 수 밖에 없는 존재가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에브라임은 자신의 왕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자신이 왕이된 전형입니다. 예언과 가문이 받은 복이 다 은혜인데 은혜를 망각하고 어느새 왕이 되어 버린 착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9절을 보세요. 패망입니다. 하나님은 패망의 원인을 “너를 도와주는 나를 대적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왕을 대적하니, 그것도 자신을 처음부터 끝까지 도와준 왕을 대적하니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10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전에 네가 이르기를 내게 왕과 지도자들을 주소서 하였느니라 네 모든 성읍에서 너를 구원할 자 곧 네 왕이 이제 어디 있으며 네 재판장들이 어디 있느냐?

무슨 말씀이십니까? 4백여년 전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을 때 이스라엘 장로들이 사무엘 선지자 에게 우리도 모든 나라처럼 인간 왕을 세워달라고 했잖아요. 하나님께서 지금 그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하나님께서 생명을 다해 친히 통치하시는데 인간 왕을 달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아담이 하나님처럼 되려고 했던 것과 같은 죄입니다. 그래서 사무엘이 기뻐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은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삼상8:7) 인간 왕을 달라는 것은 하나님이 왕되심을 버리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왕은 하나요 둘이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간 왕을 달라는 것은 더 이상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이 인간 왕은 철저히 자기를 위해 너희를 다스릴 것이라고 하여도 그들은 끝까지 관철하여 받아 내었던 것입니다. 이들의 고집에 대해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들어주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인간 왕을 주실 때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신지 보세요. 그 때 심정을 호세아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11절입니다. “내가 분노하므로 네게 왕을 주고 진노하므로 폐하였노라”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왕이신 하나님의 마음이셨습니다. 여러분의 아들과 딸들이 아버지 말고 다른 사람을 나의 아버지로 세워 달라면 어떠시겠습니까? 하나님은 분노를 삭이시면서 철없는 인간들에게 인간 왕을 허락하셨던 것입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이처럼 그들이 그토록 원했던 인간 왕이 통치한지 벌써 4백여년이 지났고 19명의 왕이 그들 위에 군림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모든 성읍에서 패망 직전에 있는 에브라임을 건져낼 왕도 재판장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결과입니다그래서 하나님께서 진노로 인간 왕, 거짓 왕들을 폐하시고 진정한 왕이신 메시아 예수님을 우리 가운데 보내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핵심 메시지요. 역사의 핵심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가장 지혜로운 자는 왕이신 하나님을 모시고 감사와 경배와 영광 가운데 살아가는 자들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 만이 왕이시다 (46a;10,11)

에브라임은 그 귀한 예언과 축복 가운데서 권력에 취해 교만해져서 자신이 왕이 되고 만 것입니다. 에브라임이 자기를 높이고, 자기를 위하여우상을 만들었다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바라 보실까요? 놀랍게도 하나님께 서는 그들이 자신을 스스로 왕으로 여기고 있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스스로 왕으로 여긴다는 것은 스스로 구원할 수 있음을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보세요. 4절을 보세요.

그러나 애굽 땅에 있을 때부터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나 밖에 네가 다른 신을 알지 말 것이라 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느니라

하나님은 애굽시절부터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지금 에브라임에게 나 밖에 다른 신은 없다고 하십니다. 다른 신을 알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 말은 다른 신과 관계를 맺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에브라임은 가나안의 바알과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다고 하십니다. 곧 애굽에서 구원해서 지금까지 인도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바로 그 하나님을 잊어 버린 것입니다왜 하나님을 잊었다고 하십니까?

내가 광야 마른 땅에서 너를 알았거늘 그들이 먹여 준 대로 배가 불렀고 배가 부르니 그들의 마음이 교만하여 이로 말미암아 나를 잊었느니라

교만 때문입니다. 교만은 어디서 왔어요? 하나님이 아시고, 먹여주셨던 광야 마른 땅에서 부터 왔어요. 언제 교만 해졌습니까? 배가 불렀을 때 마음이 교만해 졌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교만의 결과가 하나님을 잊은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에브라임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축복속에 있었던 자들입니다. 애굽의 종살이에서도 하나님은 함께 하셨고 건져내 주셨읍니다. 광야에서도 먹을 것을 주시고 배부르게 하셨습니다. 가나안 땅을 주시고 그곳에서 자기들이 짓지 않은 집과 포도원을 누리며 살게 하셨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의 열매인데 이상하게 교만하여 하나님을 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만이 단지 하나님을 잊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다음에 최종 결과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7,8절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사자 같고 길가에서 기다리는 표범 같으니라 내가 새끼 잃은 곰 같이 그들을 만나 그의 염통 꺼풀을 찢고 거기서 암사자 같이 그들을 삼키리라 들짐승이 그들을 찢으리라     

교만의 최후는 왕을 대적하는 것이고 곧 왕의 심판에 직면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복을 누릴 때 지혜로운 사람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같은 죄인을 이처럼 복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며 영광을 주님께 돌리며 겸손히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세상을 상징하는 애굽에 있던지, 인생의 곤고함을 상징하는 광야 마른 땅에 있든지 우리를 알고,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에게 먹이시고, 입히시고, 배부르게 하시는 분은 한 분 밖에 없으신 것입니다. 그 분이 바로 우리의 왕 하나님 이십니다. 절대로 왕이신 하나님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잊는 순간 패망입니다. 그러므로 어느새 하나님을 버리고 내가 왕노릇하던 자리에서 겸손히 내려 오십시오. 그리고 다시 하나님만이 왕이심을 선포하고 우리의 삶을 감사의 노래로 올려 드리세요. 그러면 감사와 겸손 가운데 왕의 은혜를 계속해서 받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 왕의 은혜가 저와 여러분의 삶에 넘치시길 소원합니다.

4.  왕께 돌아오라 (14:13)  

그러면 이처럼 비참한 상태에 놓인 에브라임이 살 길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다시 왕이신 하나님께로 돌아 가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14:1절을 보세요.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네가 불의함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졌느니라

죄와 불의로 말미암아 엎드러진 자, 곧 왕이신 하나님을 떠나 자신이 왕이 되어 살다가 넘어진 자, 실패한 자, 좌절한 자, 낙심한 자가 다시 살 길은 오직 한 길 밖에 없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가는 것밖에 없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엎드러졌다 할지라도 다시 돌아오기만 하면 다 받아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아버지의 마음이십니다. 왕의 마음이십니다.

그런데 2절을 보면 그냥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 돌아오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무슨 말씀입니까? 무슨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라는 것입니까?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거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입술의 열매를 주께 드리리이다 우리가 앗수르의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하며 말을 타지 아니하며 다시는 우리의 손으로 만든 것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의 신이라 하지 아니하오리니 이는 고아가 주로 말미암아 긍휼을 얻음이니이다 할지니라

바로 이 회개의 말을 갖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철저하고 진정한 회개의 고백으로 왕에게 나아오라는 것입니다. 오직 수송아지의 제물이 아닌 진정한 입술의 고백으로 모든 불의와 세상을 의지했던 것, 힘을 의지했던 것, 우상숭배 했던 것에 대해 회개하고 오직 고아같이 된 인생에 긍휼하심을 구하며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복음주의 아래서 너무 쉽게 예수님을 영접시키지만 죄에 대한 고백이 철저히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는데, 왕에게 돌아오는데 말씀을 가지고 오지 않습니다. 이제까지의 인생과 속 깊은 곳의 죄를 고백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변화가 나타나지 않게 됩니다. 예수님은 믿는데 여전히 죄의 종으로 살고 맙니다. 그러니 이제라도 철저히 왕께 고백하는 삶이 중요합니다. 죄에 민감하고 죄를 고백하는 삶이 진정한 긍휼을 받아 누릴 수 있는 길입니다.

이처럼 입술의 고백을 갖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에게 하나님은 어떻게 하신다고 하십니까? 4절을 보세요.

“내가 그들의 반역을 고치고 기쁘게 그들을 사랑하리니 나의 진노가 그에게서 떠났음이니라”

진정한 회개가운데 돌아온 자들을 하나님께서 고쳐주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기쁘게 그들을 사랑하시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에게서 떠났다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도 우리는 내가 왕이냐? 아니면 하나님이 왕이시냐?’ 라는 치열한 영적 싸움의 현장에서 살고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살아도 세상은 아니라고 회유하고 대적합니다그러나 이러한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감사와 영광과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는 비결은 오직 그 현장을 우리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통치하시도록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모든 성읍에서 우리를 건져 낼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 외에는 우리를 세상에서 구원할 자가 없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오직 예수님 외에는 광야 마른 땅에서 먹이시고 배부르게 하실 자가 없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오직 성령님 외에는 우리를 겸손케 하실 뿐아니라 진정한 회개의 말씀을 갖고 왕에게 돌아가게 할 자가 없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우리에게는 오직 한 분의 왕 하나님만이 전부입니다. 하나님 외에는 없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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