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March 9, 2014

MAR. 9. LWC 주일설교 :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 (시40:1∼10)

세계적으로 흥행을 하고 있는 영화가운데 디즈니가 만든 프로즌(Frozen)’, ‘겨울왕국이란 영화가 있습니다. 한국에서 애니메이션 사상 처음으로 천 만명이 넘는 소위 대박을 냈습니다. 일반적으로 애니메이션은 어린 자녀들에게 인기가 있는데 천 만명이 넘었다는 것은 어른들이 보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놀랍게도 40대 남성들이 많이 보았다고 합니다. 평론가들은 이렇게 많은 사람이 이 영화를 찾은 이유에 대해 여러가지 분석을 내 놓고 있습니다. 그 중에 모든 사람들이 이구 동성으로 하는 말이 바로 탄탄한 스토리의 구조입니다. 이전까지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은 주로 공주와 왕자간의 사랑이 스토리의 중심축을 이어갔다면 이 영화는 그 동안의 선입관을 깨고 공주와 공주 곧 자매간의 깊은 사랑을 스토리의 핵으로 두었습니다. 언니 엘사와 동생 안나의 아픔과 갈등을 넘는 서로에 대한 생각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성숙한 아가페적 사랑으로 나타날 때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들과 함께 꼭 보시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땅에서의 믿음 생활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어떻게 생각하시 는가? 에 달려 있습니다. 사실 내가 하나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보다는 하나님이 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가? 가 더욱 중요합니다. 그것을 제대로 알면 감당할 수 없는 은혜 가운데 거하게 되지만 그것을 제대로 모르면 참으로 어려운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 5절에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이란 말씀이 나옵니다. 여기서 생각(Machashabah)이란 말의 원뜻은 생각들, 아이디어들, 디자인들, 계획들등 복수로 해석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어느 정도로 생각하고 계실까요? 오늘 이 시간에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생각이 어떠신지 본문을 통해 증거하길 원합니다.

 1.  새 노래를 부르게 하신다

가장 먼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를 새 노래를 부르는 존재로 변화시키시는 것입니다. 3절을 보세요.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예전에는 어떤 노래를 불렀어요? 탄식과 절망의 노래입니다. 그것이 바로 1,2절의 노래입니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지금 시인은 무엇인가 매우 심각한 상황 가운데 놓여 있습니다. 시인은 기가 막힐 웅덩이수렁에 빠져 있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15년간 사울이 수색대원 3천명을 동원하여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상황일 것입니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시인이 그러한 절망의 상황에서도 오직 하나님만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삶에 무슨 문제가 생기면 자신의 생각을 의지하거나 다른 사람을 찾아가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시인은 철저히 하나님께만 나아가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기다리고 기다렸다고 했습니다.  

성경은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께로 나아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8:17b) 고 하셨습니다.

사실 죄 아래 있는 모든 인간은 기가막힐 웅덩이와 수렁에 빠져 있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우리의 삶 가운데 경제적인 수렁, 질병의 수렁, 관계의 수렁, 여러 수렁이 있을 수 있지만 가장 심각한 것은 죄의 수렁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인 수렁입니다. 그래서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죄의 종 노릇을 하면서 살아가는데 이것이 가장 심각한 웅덩이요, 수렁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육적 수렁에 빠져있든지 영적 수렁에 빠져 있든지 그 수렁에서 벗어나는 길은 오직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 밖에 없음을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인은 우리와 같은, 아니 어떻게 보면 우리가 겪는 수렁보다 더 깊고 험한 곳에 빠져 있었음에도 오직 하나님만 기다리고 기다렸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는 해결자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만 기다리고 찾은 자의 결과가 어떠합니까?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 셨다고 했습니다. 끌어 올리셨다고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내 발을 반석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 보세요!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 빠져서 절망과 탄식의 노래를 부리던 자가 이제 무슨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까? 새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 노래는 구원의 노래요, 감사의 노래요, 찬양의 노래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우리의 절망과 탄식의 옛 노래를 버리게 하시고 새 노래를 부르는 자들로 변화 시키시는 것입니다. 곧 찬송을 입에 두시는 것입니다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처럼 새 노래의 사람이 되었을 때 어떤 역사가 뒤따라 올까요?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그들이 그 두려움을 인해 하나님을 의지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 습니다.     

한나가 사무엘상 1장에서는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고 슬픔과 탄식의 노래를 불렀지만 2장에서는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이다 라고 새 노래를 부릅니다. 어떻게 이렇게 새 노래를 부르게 되었어요?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삼상1:19) 때문이예요. 하나님께서 한나를 생각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를 이처럼 생각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안에서 절망과 탄식의 노래를 다 내어 버리기를 축원합니다. 오직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 있다면 온전히 하나님만 기다리고 기다리길 바랍니다. 반드시 새 노래를 우리 입술에 담아 주실 줄 믿습니다. 새 노래로 우리를 보고 있는 많은 주위 사람들 특히 불신자들이 두려움 가운데 하나님을 의지하는 역사가 넘치시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2. 너무 많아 셀 수가 없다

그러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이 어느 정도라고 하십니까? 5절을 보세요.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아 누구도 주와 견줄 수가 없나이다 내가 널리 알려 말하고자 하나 너무 많아 그 수를 셀 수도 없나이다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이 많아”, “너무 많아 그 수를 셀 수도 없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성경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생각이라고 가르치고 계십니다. 너무 많아 셀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어떤분들은 하나님께서 나 같은 자에 대해 생각조차 안하실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을 믿지 못하고 자신의 부정적인 생각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너무도 분명하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이 너무 많아서 셀 수조차 없다고 하십니다.

그러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이 그토록 많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우리는 로마서 8장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이 어떠하신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미 영원 전부터 아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영원전에 택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매 이 세상에 보내셨고 부르셨다고 하셨습니다. 그 후에는 의롭다함을 얻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영원토록 영화롭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도데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이 언제부터 언제까지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까? 우리는 현실의 시각에서만 보는 연약한 인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 전 부터, 시간의 역사 속에서, 영원까지 곧 언제나 영원토록 우리를 생각하시고, 계획하시고, 실행하시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랍고 놀라 운 일입니까?

심지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생각이 너무 많아 누구도 주와 견줄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그 누구도, 내 부모도, 내 자식도, 이 세상의 그 누구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생각하시는 것보다 더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모만큼 자식을 사랑하는 관계가 어디 있나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부모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것과 견줄수 없을 정도로 우리를 생각하시고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누가 우리를 그렇게 생각해 줄까요? 어떤 사람이 우리를 그토록 생각해 줄까요? 오직 셀 수 없을 정도로 우리를 생각하시고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몇 년 전 비행기 안에서 감동이 와서 시 한 수를 썼습니다. 선물이라는 시입니다.

눈을 떠 햇살이 드리 울 때
하늘이 내려주신 상자가 열립니다.
오늘이란 선물입니다.

어제도 한아름 안겨 주셨는데
오늘도 새롭게 내려 주십니다.
하늘은 선물 제조 공장입니다.

큰 포장이 풀리면 그 안에
또 작은 선물들이 담겨 있습니다.
상자 속 마음이 궁금합니다.

사랑 긍휼 감사 노래 슬픔
환희 회복 치유 배려 위로
보석 상자들 이름입니다.

눈을 감고 세어보니 셀 수가 없습니다.
반짝이는 선물들이 까만 밤의 별이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하루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한 순간 한 순간이 하나님의 선물 포장이 열리는 상자인 것입 니다. 그것을 오늘 하루 24시간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새 노래의 날로 영원을 주셨다고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영생입니다. 이 셀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누리시길 소원합니다.

3.  내 입술을 닫지 않기를 원하신다

9절을 보세요.

내가 많은 회중 가운데에서 의의 기쁜 소식을 전하였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내 입술을 닫지 아니할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지금 시인은 많은 회중 앞에서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자신이 입술을 닫지 아니할 줄을 아신다고 합니다. 곧 하나님께서 간증의 입술을 닫지 않게 우리에게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시인은 아둘람 굴속의 육백여명의 회중 앞에서 간증하는 것 같아요. 하나님께서 사울이 파놓은 기가막힐 웅덩이에서, 깊은 수렁에서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건내셨음을 나누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 이런 간증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듣는 자들에게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것입 니다. 또한 그것이 바로 새 노래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 돌릴 때 우리의 믿음이 죽은 화석같은 믿음이 아니라 오늘도 살아 역사하는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간증은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이 영광을 취하는 것만 조심하면 우리 믿음생활에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겸손하게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는 고백, 곧 의의 기쁜 소식만을 증거하는 저와 여러분의 닫히지 않는 입술이 되기를 바랍니다. 10절을 보세요.    

내가 주의 공의를 내 심중에 숨기지 아니하고 주의 성실과 구원을 선포하였으며 내가 주의 인자와 진리를 많은 회중 가운데에서 감추지 아니하였나이다

시인이 지금 무엇을 회중 앞에서 선포했다고 합니까? “주의 공의”, “주의 성실”, “주의 구원”, “주의 인자와 진리를 많은 회중 앞에서 감추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시인이 처했던 기가막힐 웅덩이와 수렁에 바로 주의 공의, 주의 성실, 주의 구원, 주의 인자와 진리가 임한 것입니다. ‘나의 공의, 나의 성실, 나의 구원, 나의 인자와 진리아닙니다. 오직 주님의 역사를 선포한 것입니다

시인을 보세요. 그의 간절한 기도가 무엇입니까?

여호와여 주의 긍휼을 내게서 거두지 마시고 주의 인자와 진리로 나를 항상 보호하소서(11)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의 입술에 나의가 아닌 주의가 날마다 때마다 주의 긍휼하심 가운데 넘쳐 시인처럼 살아계신 하나님을 노래하는 역사가 경험되길 소원합니다.

4. 주를 찾는 자는 다 주 안에서 기뻐하게 하신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 가운데 하나는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기쁨을 주시는 것입니다. 사실 지금 시인은 기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12절을 보세요.

수많은 재앙이 나를 둘러싸고 나의 죄악이 나를 덮치므로 우러러 볼 수도 없으며 죄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으므로 내가 낙심하였음이니이다

시인은 자신의 형편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두 가지 어려움이 자신을 덮고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수많은 재앙이 둘러싸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의 생명을 찾아 멸하려는 자들이 둘러 싸고 하하, 하하하며 조롱하고, 그가 해를 당하는 것을 기뻐하는 상황입니다.

둘째는 자신의 죄악이 자기를 덮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우러러 볼 수도 없는 우울함 속에 있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죄악이 머리털보다 많아 깊은 낙심 가운데 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러한 두 가지 어려움 곧 육적 환난과 영적 환난이 이 시인의 문제인데 사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문제입니다. 우리 또한 날마다 생각지 못한 상황에 둘러싸일 때가 많습니다. 내가 원치 않는데도 그런 일이 벌어집니다. 진퇴양난의 상황이 찾아 올 때도 있습니다. 또한 죄와 허물 때문에 우리의 영혼와 마음에 깊은 그늘이 드리워질 때가 있습니다.

이 두 어려움이 시인 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이 처한 정확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위의 하하, 하하조소하는 소리에 의기소침해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이 두 어려움 가운데서 지속적으로 머물러 절망의 상태에 낙심하고 있는 것을 허락하시지 않습니다. 시인을 오직 바로 자기 사람들의 지속적 절망을 허락하시지 않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하심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16절을 보세요.

주를 찾는 자는 다 주 안에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는 항상 말하기를 여호와는 위대하시다 하게 하소서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 성도의 진정한 즐거움과 기쁨은 오직 주님을 찾고, 주님 안에 들어가 거할 때에만 가능합니다. 주 안에서만 주님의 위대하심을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시인 다윗을 보세요. 그가 약 15년동안 사울이 파놓은 기가막힌 웅덩이와 수렁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굴을 바로 기도의 굴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대적이 파놓은 함정을 굴을 하나님을 만나는 기도의 굴, 보좌의 굴로 만들었을 때 어떤 은혜가 왔습니까?

주님 안에서 진정한 즐거움과 기쁨이 왔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위대하심까지 그 굴 속에서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인생의 어려움이 닥친다 할지라도 오직 우리 ()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이 많고 셀수도 없다는 그 믿음을 갖고 나아가면 옛 노래는 사라지고 새 노래가 나오는 것입니다. 근심 걱정은 사라지고 즐거움과 기쁨이 지배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5.  가난하고 궁핍해도 나를 생각하신다

마지막으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생각이 어떤지 아십니까? 17절을 보세요.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나 주께서는 나를 생각하시오니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라 나의 하나님이여 지체하지 마소서

내가 가난하고 궁핍해도 하나님은 나를 생각하신다고 했습니다. 나를 생각하실 뿐만 아니라 나의 도움이 되시고, 나를 건지신다고 하세요. 하나님께서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생각하시고 돕고, 건지시므로 교회도 그렇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에서는 부유하고 풍성한 사람 주위에 사람들이 모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가난해지면 친구도 떠납니다. 그렇게 매정한 것이 세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그렇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가난한 자와 소외된 자에게 가장 가까이 계십니다.

이번에 한국에서 세 모녀가 함께 세상을 떠난 사건이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너무나 가슴 아픈 사건 이었습니다. 그 분들이 얼마나 성실한 분들인지 마지막 월세 70만원을 하얀 봉투에 담아 넣고 갔습니다. ‘주인 아주머니 너무 죄송합니다라는 글을 남겼습니다.

성경은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와 조롱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라고 했습니다. (14:31a;17:5)

또한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고 했습니다.
(19:17)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소유 여하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부유한 바리새인의 헌금보다는 가난한 여인의 두 렙돈을 더 크게 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또한 더 나아가서 우리 성도들도 그런 가치관과 세계관을 가져야만 합니다. 소유에 따라 사람을 구별해서는 안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세상 그 누구보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한 분 한 분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절절하게 생각하고 사랑하고 계심을 꼭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나는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언제나 나를 생각하고 계십니다. 나는 하나님을 잊어도 하나님은 절대로 나를 잊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오늘부터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과 사랑이 너무 많아 셀수 없는 그 은혜를 세고 또 세며 사는 축복이 넘치길 소원합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생각과 사랑이 이 세상이 주는 고통과 죄보다 더욱 크게 넘쳐 흘러 새 노래가 날마다 저와 여러분의 입에서 떠나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오직 하나님 께만 영광 돌리며 만민에게 주의 구원을 선포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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