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며 삽시다
엡1:15∼23
지난주에 우리는 사도바울이 왜 서신서를 “찬송하리로다!” 로 시작하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우리 곧 교회를 향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놀라운 비전을 보면서 하나님을 찬송할 수 밖에 없음을 고백하였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는 완전한 예수님의 형상으로 만드시려고 만세 전에 아셨고, 택하셨고, 부르셨고, 의롭다 하셨고, 영화롭게 하시는데 이것이 바로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늘의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내려 주시는 것으로 진행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사실 바울은 처음에는 이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영안이 닫혀 있던 사람입니다. 당시 그는 가말리엘이라는 최고의 문하에서 구약을 통달한 자였습니다. 어떤 분은 바울의 학문적 소양이 지금식으로 말하면 하버드 대학교에서 박사학위 7개를 소유했을 정도의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지식에만 뛰어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열심은 당대 그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이 믿는 것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생각하는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그 생각이 옳다면 그대로 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지키려고 애쓰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니 바울이란 사람을 정리하면 지식과 열정과 행동이 탁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탁월함이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어떤 열매를 맺었습니까? 교회를 파괴하고, 성도들을 잡아 가두며, 예수님을 핍박하는 모습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는 율법의 안경, 율법의 세계관을 쓰고 세상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의 눈으로 보니 예수는 이단 중에 이단이요, 교회는 다 파괴해 버려야 되는 것이고, 성도는 다 가두던지 죽이던지 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는 실로 그렇게 생각했고 열정과 행동 으로 옮겼습니다. 바로 그 마음으로 시리아의 다메섹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초대교회에 닥친 픽밥을 피해 다메섹으로 가 교회를 세웠다는 정보를 갖고 그들을 잡으러 가는 것입니다. 외국에까지 가서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올 정도니 얼마나 열심히 특심한 사람입니까?
그렇게 다메섹 도상을 걷고 있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그를 둘렀습니다. 그리고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 하느냐?”란 주님의 음성을 들렸습니다. 바울이 “뉘시냐?”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 빛은 예수님의 빛이요, 그 빛은 생명의 빛이였습니다. 그 빛이 얼마나 밝은지 바울은 눈을 떴지만 눈이 멀고 말았습니다. 그는 삼일동안 금식하며 회개하고 거듭나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이 보낸 사람 아나니아가 안수하여 기도했을 때 바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겨졌다고 했습니다.
율법의 안경을 벗고 복음의 안경, 은혜의 안경 곧 하나님의 눈을 갖게 된 것입니다. 바로 이 날부터 바울의 생각, 관점, 삶이 완전히 변화 되었습니다. 율법의 눈은 다른 사람의 허물과 죄를 크게 보게 했다면, 복음의 눈은 다른 사람을 향한 그리스도의 속죄와 비전을 보게 만들었습니다.
더 나아가 율법의 하나님으로만 알았었는데 복음의 하나님을 알게 된 것입니다. 예전에는 그저 심판만 보았는데 이제는 영원과 창조와 타락과 구원과 영생의 비전을 보게된 것입니다. 이것을 보게 되자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정죄의 사람에서 사랑의 사람 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비난의 사람에서 눈물의 사람으로 변화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바울이 오늘 무엇이라고 합니까? 바로 이로 말미암아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듣고 내가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하고 감사를 그치지 않는다고 했습 니다. 사람을 잡아 가두고 죽이는데 앞장섰던 사람이 기도의 사람, 감사의 사람이 된 것입 니다. 그러면 바울이 지금 에베소 교회를 위해 무엇을 기도합니까? 그의 기도 내용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알게 하소서
17절을 보세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바울이 지금 에베소 교회를 위해 가장 먼저 기도하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알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어떠합니까? 우리가 가장 먼저 기도하는 내용은 무엇입 니까? 나의 필요와 나의 상황을 올려 드리는 기도가 가장 앞설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바울은 자신이 옥에 갇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에베소 성도들의 삶이 척박함을 알면서도 가장 먼저 간구하는 것이 교회가 하나님을 알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지만 바른 신앙, 바른 삶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만들어 놓은 하나님을 믿고 있는지 모릅니다. 당시에는 더 했습니다. 누구보다 바울이 그랬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먼저 하나님을 알게 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여기서 “알다”라는 말은 “에피그노시스”란 말인데 “정밀하고 정확한 앎”을 의미 합 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에베소 교회가 하나님이 누구신지, 어떤 분이신지 정확하게 알기를 원했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응답하시도록 간구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이처럼 ‘정밀하고 정확하게 알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오직 하나님 자신이 자신을 알려 주실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을 바로 계시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실 바울은 예전에는 자기 편에서 하나님을 안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그는 결코 하나님을 알지 못했었습니다. 그래서 무엇이라고 기도합니까? 하나님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사 그들이 하나님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17절을 보세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바울이 지금 에베소 교회를 위해 가장 먼저 기도하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알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어떠합니까? 우리가 가장 먼저 기도하는 내용은 무엇입 니까? 나의 필요와 나의 상황을 올려 드리는 기도가 가장 앞설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바울은 자신이 옥에 갇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에베소 성도들의 삶이 척박함을 알면서도 가장 먼저 간구하는 것이 교회가 하나님을 알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지만 바른 신앙, 바른 삶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만들어 놓은 하나님을 믿고 있는지 모릅니다. 당시에는 더 했습니다. 누구보다 바울이 그랬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먼저 하나님을 알게 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여기서 “알다”라는 말은 “에피그노시스”란 말인데 “정밀하고 정확한 앎”을 의미 합 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에베소 교회가 하나님이 누구신지, 어떤 분이신지 정확하게 알기를 원했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응답하시도록 간구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이처럼 ‘정밀하고 정확하게 알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오직 하나님 자신이 자신을 알려 주실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을 바로 계시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실 바울은 예전에는 자기 편에서 하나님을 안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그는 결코 하나님을 알지 못했었습니다. 그래서 무엇이라고 기도합니까? 하나님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사 그들이 하나님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면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계시의 영이 무엇입니까? 바로 성령이십니다. 성령이 아니 고는 그 누구도 하나님을 알 수가 없습니다. 성령님이 아니면 우리가 예수를 믿을수도 없고 알수도 없습니다. 성령님은 죄로 말미암아 죽었던 우리의 영을 살리셔서 거듭나게 하십니다. 또한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십니다. 영과 마음과 생각과 삶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여러분! 바로 하나님께서 이 성령의 감동을 받은 자들을 통해 성경을 기록하신 것입니다. 곧 성령님이 성경의 원저자이십니다. 성경을 많은 말로 설명할 수 있지만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하나님의 지혜와 계시 그 자체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증거하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되고, 성령의 조명하심으로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며,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해 삶속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기도도 바뀌어야만 합니다. 먼저 하나님을 알게 해 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지혜와 계시의 영을 충만히 부어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바로 만나고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성도와 교회의 첫번째 간구가 되어야 합니다. 이 하나님을 아는 은혜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 우리 교회 안에 넘치 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행하신 일을 알게 하소서
두번째 바울의 기도 내용은 무엇입니까? 18,19절을 보세요.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먼저 하나님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한 후 그 다음의 기도는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 무엇인지 알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첫번째로 하나님이 행하신 일은 부르심입니다. 곧 콜링입니다. 로마서에서 콜링은 구원의 단계에서 미리 아심과 미리 정하심 다음에 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지금 무엇이라고 간구합니까?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부르셨는데, 바로 그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알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부르셨는지 그 부르심의 목적을 알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잘 모르면 그저 예수 믿고 잘사는 것이 부르심의 소망인 것으로 알게 됩니다. 물론 예수 믿고 잘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수준에 머무르고, 그 수준이 비전이 되면 기독교는 천민 자본 주의와 기복주의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그 정도 수준이 아닙니다.
바울은 바로 다음구절에서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말합니다. 무엇이라고 합니까?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자, 다시 번역합니다. “성도가 받은 그 상속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 알게 하소서”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님의 형제가 되어 공동 상속자가 되므로 그가 받을 상속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 곧 이것이 부르심의 소망인데 이것을 알게 해 달라고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무엇으로 비유할까요? 마치 부르심의 소망을 모른다는 것은 세계 최고의 부자의 아들이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의 아버지도 누구인지 모르고 홈리스처럼 비참하게 살아가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요?
또 무엇이라고 기도합니까?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무슨 말씀입니까? 부르심의 소망을 이루어 주시기 위하여, 성도가 상속자로서 감당할 수 없는 영광의 풍성함을 갖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강력한 힘으로 그것이 성취되도록 능력을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영원부터 영원까지, 창조에서 재림까지, 출생에서 영생까지 하나님께서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부르시고 상속자의 영광을 풍성히 받는 그 날까지 가장 큰 능력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탄 또는 그 누구도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이 열심을 막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을 하나님의 이 놀라운 베푸심을 알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 한 분 한 분을 하나님께서 이렇게 섬기고 계신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이 무엇이 관대 우리 주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우리를 부르시고 인도하시고 영화롭게 하십니까? 감당할 수 없는 은혜인 것입니다. 이것이 사실 복음의 핵심이예요. 그런데 많은 경우 성도들이 자신이 누구인지 몰라요. 그래서 여전히 부르심도 이해하지 못하고, 부르심의 소망은 생각도 못하며, 상속자라는 생각도 못해요, 그러니 자신이 영원토록 받을 상속의 영광이 얼마나 큰 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계속해서 하나님을 알게해 주세요.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알게 해 주세요. 라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다시 1:18절을 보세요. 바울이 성도를 위해 무엇을 기도합니까?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 사”라고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마음의 눈이 어두운 사람은 결코 하나님도, 하나님의 부르심도, 부르심의 소망도, 성도의 상속권도, 상속자의 영광도, 그 영광의 풍성함도, 이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크신 능력이 우리 삶 전 생애에 지속적으로 임하고 있는 것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고 교회에 나오고, 이것을 모르고 예수를 믿는다면 결국 잘못 믿고, 잘못된 방향으로 가기가 쉬운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그 어떤 기도보다도 먼저 하나님을 알게 해 달라고, 하나님이 성도를 부르심이 무엇이고 어떠한지 알게 해 달라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바울의 기도처럼 오늘 이 아침에 저와 여러분의 마음의 눈이 완전히 열리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의 지도(Map)가 분명하 게 심비에 새겨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새로운 왕과 그의 세계를 알게 하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사랑하는 여러분!
바울은 이 땅의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를 알게 해 달라고 간구 하면서 그 능력에 대해 선포합니다. 그것이 바로 20절부터의 말씀입니다.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하나님의 능력 곧 성도를 부르시고, 상속자의 영광의 풍성함에 이르게 하는 능력이 곧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부활케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하나님 우편에 앉히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하나님 오른편에 앉히셨다는 것은 왕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 은 이미 영원부터 왕이십니다. 그러나 인간으로 오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심으로 하나님 우편에 앉으심으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구속 역사를 승리하고 오신 예수님의 오른손을 높이드사 임금과 구주로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선포하신 것입니다 (행5:31) 그래서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 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가장 뛰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누구를 위해서요? 바로 저와 여러분! 우리 성도를 위해서요! 교회를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22,23절을 보세요.
만물이 그의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 셨다고 했습니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 이라고 하셨습니다.
자, 보세요. 여기서 이제 새로운 구속의 우주 질서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는 하나님과 그의 우편에 앉으신 왕이신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리고 그리 스도의 몸인 교회가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가 되십니다. 교회 아래 만물이 있습 니다.
이 말이 무엇입니까? 머리되신 예수님과 더불어 우리가 만물을 다스린다는 것입니다. 이것 이 성도의 상속권입니다. 이것이 궁극적인 교회의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전에 바울은 이것을 몰랐습니다. 율법의 안경을 쓰고 있을 때는 사람이 좁아지고 말았습니다. 늘 의심하고 정죄하고 판단하는 불행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안경을 쓴 후에 그는 성도를 향한,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를 알게 된 것입니다.
영원부터 영원까지, 창조에서 재림까지, 출생에서 영생까지 우리 성도의 삶과 역사 속에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과 재림의 능력으로 이루실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성도라는 이름의 상속권의 영광이 얼마나 큰지? 이것을 위해 하나님께서 얼마나 놀랍게 능력으로 역사하셨는지 알기를 소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야 바울이 더욱 이해가 갑니다. 기도의 수준이 다릅니다. 마음의 눈으로 영원한 하나님의 비전을 다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비전이 있는 한 감옥도, 그 무엇도 더 이상 그를 가둘 수 없습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의 기도가 바뀌기를 소원합니다. 기도의 수준이 바뀌면 삶의 수준도 바뀔 것입니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이 비늘이 벗겨지는 은혜가 오늘 아침 충만히 임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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