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공동체 위에 부어진 성령
-행1:4∼5-
성경은 교회가 버림받은 돌이신 예수님을 기초로 해서 세워졌다고
했습니다. 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기초가 되어 그 위에 터와 기둥과 그리고 벽돌 하나 하나 지붕까지도 모두 십자가 예수님의
DNA로 세워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교회 공동체의 모습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기인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으로부터 버림 받은 돌과 그를
닮은 작은 돌들을 최고의 보석으로 만드셔서 결국 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건축하시는 하나님이시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씀하시는 교회의 시작과 과정과 끝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런데 이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철저히 따라
다닌 사람이었습니다.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처음부터 열정적으로 따라 다녔습니다. 누구도 그의 열정을 이기지 못할 정도 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이 과연 무엇을 하시려는지도
모르고 따라다닌 사람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그가 알게 되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하시고자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그리고 교회가 무엇인지도
알게 되고 결국 교회의 궁극적인 모습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가
누구인지 아세요? 바로 베드로입니다.
베드로는 처음에는 십자가도 부활도 몰랐던 사람입니다. 입으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나이다”라고 했지만 곧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와 부활을 말씀 하시니까?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주님을 붙잡고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한 사람입니다. 주님을 따라
다녔고, 주로 고백했지만 곧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는 책망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나중에 어떻게 됩니까? 온전히 변화되었습니다.
그가 변화되어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아세요? 사도행전4:11절에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지금 베드로가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기 몇일 전에 하신
말씀을 그대로 하고 있어요. 이전에는 예수 님의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예수님과 똑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 을 말합니까? 베드로가 드디어 하나님이 건축자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전에 는 몰랐어요. 그는 그저 예수님의 기초 위에 자기 명성, 자기 공로, 자기 포지션을 쌓아 올리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그것이 교회인줄 안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세우려고 그렇게 서로 싸웠잖아요? 그런데 이제는 알게 된 것입니다.
건축자 하나님의 뜻을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면 베드로가 어떻게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예수님께서 건축자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까?
베드로는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생명과 그 이후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되었을 때 비로소 하나님이 건축하시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본질이 무엇인지, 그 원리가
무엇인지 알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베드로는 갈보리의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오순절의
성령을 체험하면서 하나님께서 십자가 위에 세운 교회 위에 성령을 부어주신 것을 직접 경험한 사도가 됩니다. 그 이후 그는 완전히 변화됩니다.
그는 교회가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교회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고,
어떻게 세워져야 하며, 어떻게 자라가야함을 알게 된 것입니다. 한마디로 십자가 제물 위에 세워진 교회와 십자가의 원리로 세워지는 교회를 보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런데 그가 하나님께서 그 십자가 위에 세운 교회 위에
하나를 더 부어주심을 경험하게 되요?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거룩한 성령이십니다. 곧 교회를 십자가와 성령의 공동체로 만드시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주님이 세우시는 우리 공동체가 하나님께서 그토록 세우시기 원하시는 이 두 가지
곧 온전한 십자가와 거룩한 성령의 공동체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십자가 위에 세운 교회를 성령의
공동체로 만드십니까?
1. 성령 공동체로
만드시는 원리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구약의 제사를 통해서 우리에게 계시해
놓으셨습니다. 제사가 무엇입니까? 왜 제사를 드리라고 했습니까? 제사는
하나님께서 임재하셔서 자기 백성과 함께 사시려는 것이 대 전제입니다. 그런데 여기 한가지 문제가 있어요.
인간의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함께 살수가 없는 것입니다. 함께 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면 인간은 죄 때문에 그 자리에서 죽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반드시
죄를 해결해야 하는데 피흘림이 없이는 절대 죄사함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아시고 제사를 통해
인간 대신 어린 양이 피를 흘려 죽게 하심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세요.
그래서 구약의 제사는 죄인이 하나님을 만나 함께 사는
과정이예요. 따라서 제사에서 가장 먼저 행하는 것이 제물을 죽여 가죽을 벗기고 각을 떠서 제단에 태우는 것입니다. 바로 그 제사드리는 자와 제물을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게 되면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아세요?
레위기 9:22∼24
아론이 백성을 향하여 손을 들어 축복함으로
속죄제와 번제와 화목제를 마치고 내려오니라 모세와 아론이 회막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백성에게 축복하매 여호와의 영광이 온 백성에게 나타나며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제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사른지라
역대상 21:26
다윗이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려 여호와께 아뢰었더니 여호와께서 하늘로부터 번제단 위에 불을 내려 응답하시고
역대하 7:1
솔로몬이 기도를 마치매 불이 하늘에서
부터 내려와서 그 번제물과 제물들을 사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하니
열왕기상 18:38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지금 구약성경에 네 번에 걸쳐서 하나님으로 부터 불이
내려온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세, 다윗, 솔로몬, 엘리야의 시대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역사가 일어났습니까? 하늘에서 불이 제단과 제물
위에 내려왔습니다. 여기서 불이 제단과 제물에 내려왔는데 이것이 순서예요. 어린 양을 잡아 제물을 제단에 드린 후 하나 님께서 그 제사드린 자와 제물을 기쁨으로 받으시면 그 다음에 하늘로 부터 불이 임하는
것입니다. 결코 불이 먼저 내려오고 그 다음에 제물을 올린 것이 아니예요. 제물이 먼저고 그 다음에 불이 임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지금 무엇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제물되셔야지만
그 다음에 하늘로 부터 불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불이 무엇입니까? 바로 성령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을 체험하기 원하시지요? 성경은 성령을 한번만 체험하고
추억으로 삼으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엡5:18절에 보면 성령충만을
계속해서 받으라고 명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성령의 충만함을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성령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저와 여러분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의 온전한 제물로
드려질 때 비로소 성령께서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아무데나 오시는 것이 아니예요. 성령은 오직 십자가의 제물
위에만 부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물되지 않고 성령을 받으려는 것은 욕심이예요. 잘못된 것입니다. 뭘 모르는 것입니다. 내가 죽지 않고
그저 신비한 은사나 능력을 소유하고 싶어서 성령을 달라고 하면 잘못된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다른 불을 받아요.
그래서 성령을 받았다고 하는데 삶에 제물됨이 없는 엉뚱한 짓들을 하는 것입니다. 현재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에 어느 교회에서는 그토록 성령을 사모해서 교회가 뜨거운데 예배마치고
나가면 서로 먼저 나가려고 교통질서를 무시하고 신호등도 다 무시하고 갑니다. 그것이 성령을 받은 것입니까?
성령받은 것은 현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열매로 아는 것이예요. 성령은 우리가 온전한
제물되어질 때, 곧 내가 철저히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더불어 죽을 때 역사 하시는 것이예요. 이것이 원리요, 이것이 본질입니다.
그것이 나타난 것이 바로 신약의 오순절 성령강림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제물되심
후에 성령께서 오시는 것입니다. 구약의 제단과 제물 위에 불이 내린 것은 모두 이것을 예표하는 것입 니다.
저는 우리 공동체가 온전한 제물되고 그 위에 성령의 강력한 임재 가운데 나아가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2.어떻게 십자가 공동체를
성령 공동체로 만드십니까?
행1:4,5을 보세요.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먼저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무엇을 기다리라고
하세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곧 성령을 말씀하십니다.
약속하셨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약속하셨다는 것은 성령을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계획이라는 것입니다. 반드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하신 날 예수님은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시고 승천하여 올라가십니다.
그리고 몇
날이 못되어 성령이 오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몇 날이 중요합니다. 이 몇 날은 시간적으로는 보다는 영적으로
중요해요. 그들이 무작정 몇 날 동안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 예요. 교회 공동체가 매일 모여 온전한 십자가의 제물이 되며 기다리는 것이예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본질을 이제 깨달으며 그 안에서 자기들도 죽고 다시 사는 것을 경험하는 것이예요. 약
120명의 성도들이 날마다 모여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썼다고 했습니다. 더불어 마음을 같이 했다고 했는데 바로 이 마음으로 하나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약속하신 성령을
공동체가 받는 자세입니다. 곧 십자가의 제물 공동체가 된 것입니다.
그들은 십자가와 부활 이전에는 다 흩어진 자들이요, 두려움과 초조함 속에서 있었던
자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십자가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며 이제야 비로소 십자가 위에 세운 공동체로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또한 동일한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하며 기다여야만
합니다. 기도 가운데 그리스도와 더불어 십자가의 제물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오순절에 임하셨던
성령께서 우리 공동체에도 강하게 임재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실제적으로 오순절에 어떻게 성령이 임하셨습니까? 행2:3을 보세요.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불의 혀처럼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무슨 말씀입니까?
한 사람 한 사람이 곧 각 사람이 다 온전한 제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왜요?
온전한 제물이 되어야만 불이 임한다고 했잖아요. 그러므로 그들은 십자가의 예수님과
더불어 함께 제물된 자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합당한 자들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성령이 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곧 십자가의 공동체가 성령의 공동체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만약 제물이 되지 않았는데도
성령을 받았다고 해 보세요.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처럼 위험한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짜 성령을 받은 사람은 제물이기에 겸손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은 120명의 성도들에게만 부어지나요?
아니예요. 행2장 38, 39절을 보세요.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누구든지 회개한 자에게 선물로 주신다고 했어요. 회개는 자신이 철저한 죄인임을
고백하여 돌이키는 것이고, 세례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사는 것을 의미해요. 곧 십자가의 제물됨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죄사함을 받아 죄의 문제가 해결된 사람에게만
성령의 선물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언제 성령이 오셨습니까? 오순절에 오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제물 되시고 부활 하신 후 지상에 40일간 계셨다고 했습니다. 오순절은 유월절이 지난 안식일 다음 날부터 50일째 되는 날이니 승천하신 후 열흘쯤 되서 임하신 것입니다.(레23:15)
그러면 성령은 2천년전 오순절에만 오시고
만 것입니까? 아닙니다. 행2:18,20 보면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까고 곧 재림 때까지 계속해서 성령을
부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왜 성령을 부어 주십니까? 오순절을 다른 이름으로 맥추절,
초실절 이라고 합니다. 보리를 첫 추수하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하셨다는 것은 곧 영적 추수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바로 오순절의
120명의 성도가 십자가 새 언약의 첫 추수가 되는 것이예요. 그리고 동시에 바로
이 십자가 위에 세운 교회 위에 성령의 능력으로 입히셔서 성령 공동체를 통해 추수의 역사를 계속해서 해 나가시려는 것입니다.
언제까지요? 예수님 다시 오실 때까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공동체에도 성령이 오셔서 추수하 시는 것이고, 또한 우리 공동체가
온전한 십자가의 제물로 날마다 나아갈 때 성령의 공동체가 되어 추수의 사명을 함께 감당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성령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기를 소원합 니다.
3. 성령 공동체는 반드시
열매가 있습니다.
이처럼 십자가에서 온전히 제물되는 공동체가 더불어 성령의
공동체가 되면 반드시 열매를 맺게 됩니다. 어떠한 열매입니까?
행2:11을 보세요.
행2:11을 보세요.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숨어 있던 자들이, 말 못하던 자들이 이제는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입을 열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큰 일,
하나님의 구원 역사와 회개를 말하는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예수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누구에게요? 15개 지역에서 모든 자들에게,
그들에게 선교가 시작되고 선포된 것입니다. 놀랍게도 성령의 역사로 그들의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선포한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 공동체의 열매입니다.
다음으로는 진정한 공동체로 회복됩니다.
행44∼47절을 보세요.
행44∼47절을 보세요.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서로 필요한 사람들에게 사랑과 물질을 나누는 진정한 공동체가
되었어요. 곧 한 몸이 된 것입니다. 우리 안에 물질로 어려운 자, 힘든 자를 서로 사랑하고 진정으로 나누고 섬길 수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사람의 의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으로 할 때 진정한 사랑의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을 같이한다고 했습니다. 동일한 성령 안에서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한 마음으로 날마다 성전에서 모이고 집에서 모였습니다. 모여서 떡을 떼며 예배하고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가르치고 전도하기를 그치지 않았다(행5:42)고 했습니다. 내적으로, 외적으로 건강한 공동체가 된
것입니다.
행3:6절을 보세요.
행3:6절을 보세요.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 공동체는 은과 금으로 역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십자가와 성령으로 역사가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은과 금은 없다고 했습니다. 가난한 사도입니다.
그러나 그에게 예전에 없던 것이 생겼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내게 있는 이 것” 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베드로 개인도, 초대교회도 이제 한가지를 갖게
되었는데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그 이름의 능력입니다.
우리 교회도 가져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은과 금이 아닙니다.
오직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그 이름의 능력을 경험하고 그 이름의 능력을
확인하는 교회가 되길 소원합니다.
우리가 예수 이름의 능력을 믿고 물고기 두 마리, 보리 떡 다섯개를 바친 소년처럼
그렇게 내가 할 수 작은 것들로 주님께 헌신하면 주님께서 그것을 축사하셔서 오천 명이 먹고 12광주리가 남는
역사를 이루시는 것입니다. 이런 은혜의 경험과 열매가 넘치길 소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진정한 성령 공동체의 열매가 행3:12,15절에 나타납니다.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너희가…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여기에 나타난 십자가와 성령 공동체의 열매가 무엇입니까?
십자가와 성령의 임하심을 경험하기 전에 베드로는 3년 내내 가장 높은 자가
되길 원한 사람입니다. 예수님 다음으로 12명 가운데 가장 높아지고
싶은 자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변화 되었습니다.
앉은뱅이를 고치고 나서도 자신의 권능과 경건으로 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진정한 자기 겸비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자의 제물되고 그 위에 성령의 부음을 받은
사람과 공동체의 진정한 모습입니다. 진정한 십자가 공동체와 진정한 성령 공동체는 더 이상 자기를 높이지 않습
니다. 자기를 주목하는 것을 거부합니다. 오직 오직 하나님과 예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것이예요.
사랑하는 여러분! 참으로 우리
LWC 말씀으로 사는 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길 소원합니다. 오직 건축자이신 하나님에
의해 모든 일을 십자가로 시작해서 십자가로 진행하고 십자가로 끝내는 교회, 성령으로 시작해서 성령으로 진행하고
성령으로 마치는 교회가 되길 소원합니다. 참된 십자가와 성령의 교회가 되어 오직 예수님만 높이고 예수님만
증거하는 교회 되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