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열심이 이루신다
-사9:1∼7-
예전에 에콰도르 선교지를 방문한 적이 이었습니다. 에콰도르는 스페인어로‘적도’라는 의미입니다. 과연 적도가 에콰도르를 관통하고 있었습니다. 적도 지역을 방문한다는 것은 특이한 은혜였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이 적도를 기준으로
북반부와 남반부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거의 북반부에서 생활을 하지만 때때로 남반부 지역을 여행하게
되면 우리의 고정관념을 많이 버리게 됩니다. 예를 들면
북반부가 겨울이면 놀랍게도 남반부는 여름 입니다. 북반부에 개나리가 활짝 피면 남반부에는 감나무에 감이 열립니다.
얼마나 놀랍고 신비한지 모릅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지구를 이토록 아름답게 만들어
놓으셨을까요?
지금은 기술이 발달하여 항해하는 사람들이 다 디지털 레이더를 사용하지만
예전에는 달랐 습니다. 나침판도 없던 시절에는 모두
별을 보고 방향을 잡았습니다. 북반부에서 항해하는 배들은 북극성을 기준으로 삼아 동서남북을 구분하여 배의
키를 잡았습니다. 그러나 남반 부를 항해하는 배들은 남십자성을 기준으로 삼아 구별하여 항해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인생의 항해의 영원한 별이 하나 있습니다. 그 별은 인류 역사의 북극성이요, 남십자성과 같습니다. 이 별을 통해서만 우리가 인생과 역사의 방향을 바로 잡는 절대 기준이 됩니다. 그것은 마치
북극성과 남십자성이 항해하는 자에게 선물로 그 창조 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변치않는 상수와도 같은 것입니다. 영원토록 변치않는 별 별 중에 별입니다. 왕중에 왕입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인생의 역경과 혼돈 속에서 헤메인다 할지라도 영원토록
비추는 하늘의 이 별을 바라보면 방향을 잡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갈길이 보이는 것입니다. 그 별은 언제나 어디서나 그 자리에 있습니다. 바로 우리 인생의 나침판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오늘 본문이 이 메시지를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떤 말씀을 하십니까?
1. 인생에게는 소망이 없다
2절을 보세요.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과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들이 누구입니까? 1절에 나옵니다. 전에 고통을 받던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곧 옛적에 고통을 받던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은 어디입니까? 이스라엘 땅의 북쪽을 말합 니다.
그 곳을 해변 지중해 쪽부터 아셀 지파, 스불론 지파, 갈릴리 지역은 납답리 지파가 정착해 살았습니다.
그런데 열왕기하 15장 19절에 보면,
북 이스라엘 왕 18대 베가 때에 앗수르왕 디글랏 빌레셀이 와서 이욘과 아벨벳 미아가와 야노아와 게데스와 하솔과 길르앗과 갈릴리와 납달리 온 땅을 점령하고
그 백성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옮겼다고 했습니다.(BC약733년)
앗수르가 약속의 땅을 가장 먼저 점령한 곳이 바로 이 북쪽 지역들이었어요. 그러니 이 북쪽지역의 백성들에게 가장 먼저 흑암이 닥친 것입니다.
앗수르의 강력한 군대가 닥치는 대로 죽이고 파괴하고 멸시를 당한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입니까? 전쟁입니다. 모든 전쟁이 상상할 수도 없는 고통을 가져오지만 특히 고대의 전쟁은 더욱 험악합니다. 왜냐하면
전쟁이 단순히 몇 번의 싸움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 삶을 바꾸어 놓기 때문입니다. 특히 앗수르가 이스
라엘을 북쪽에서 요단 동쪽까지 다 정복하면서 장기적인 압박과 폭정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끊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지역이 흑암으로 가득차고, 사망의 그늘진 땅이 된 것입니다.
무엇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어요? 그들의 죄 때문입니다. 이 땅은 하나님의 언약의 땅으로 출애굽해서 가나안 땅을 언약의 땅으로 주시므로 그 곳에서 하나님을 잘 섬기고 살라고 주신 땅입니다. 그런데 이 백성들이 그 언약의 땅에서 하나님과 그 말씀을 버리고 가나안의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섬기고, 그 타락한 문화에 속화되고, 맘몬을 우상으로 섬기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이 베가 왕때까지 하나님께서 엘리야와 엘리사, 요나와 아모스와 호세 아 선지자들을 부지런히 보내고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앗수르 라는 무시무시한 심판의 철퇴가 가해진 것입니다.
그러니 이 죄악의 때, 심판의 때를 자초한 인생에게는 아무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사야서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를 참으로 헌신짝처럼 내버리는 존재 입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언약을 체결하시고, 최고로 대우하셔도 인간은 자기의 본분을 잊고 교만하여 하나님을 떠나는 존재입니다. 이것이 구약의 핵심메시지예요. 이미 에덴에서 아담과 하와에게서 다 드러난 것인데,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에게 다시 기회를 주신 것이예요. 그런데 결과는 똑같아요. 이것이 인간이예요. 전적으로 부패하여 전혀 소망 이 없는 존재인 것입니다.
그러면 남쪽 예루살렘은 괜찮은가? 그렇치 않아요. 똑같아요. 하나님 앞에서는 다 흑암이요, 사망의 그늘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북쪽에 가장 먼저 심판을 받은 지역보다는 아직 심판이 오지 않은 남쪽이 더 의롭고 괜찮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게 아니예요. 성경의 메시지는 북 이스라엘이나 남 유다나 다 똑같다는 거예요. 그것이 열왕 기하 19:18,19절에 분명히 나와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심히 노하사 그들을 그의 앞에서 제거하시니 오직 유다지파 외에는 남은 자가 없으니라 유다도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고 이스 라엘 사람들이 만든 관습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온 족속을 버리사
곧 인간은 죄와 심판으로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거하는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서는 스스로 아무런 소망을 갖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사야 선지자가 지금 남쪽 유다 백성들에게 외치는 메시지요, 오늘 우리에게 울리는 메시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착각하지 마세요.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목사도 마찬가지예요. 저는 어릴적에 목사님은 화장실도 가지 않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목사님이 화장실에서 나오는 것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았어요. 그 후에 제가 막상 목사가 되어보니 죄인 중에 죄인이예요, 괴수중에 괴수예요. 목사라는 타이틀이 죄성을 이길 수 없어요. 이것이 인간의 형편이예요. 조금 은혜를 받았어요? 조금 체험을 했어요? 착각하지 마세요. 그래도 인간 스스로에게는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는 소망이 없습니까? 예, 우리 인간에게서는 절대 소망이 없어요. 우리 안에서는 흑암과 사망의 그늘이 있을 뿐이예요. 만약 우리 안에 조그마한 소망이 있다면 그것을 키우면 되요, 그 빛을 밝히면 되요. 그런데 그것이 무엇이 되는지 아세요? 바로 율법주의요, 자기 의가 되는 것입니다. 또 다른 흑암이요, 여전한 사망의 그늘에서 헤메일 뿐입니다. 인간이 왜 이렇습니까? 죄로 인해 전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죄와 타락이 이처럼 무서운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오늘 말씀은 인간에게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1,2절을 보세요.
전에 고통 받던 자에게는 (후에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과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보세요, 여러분! 소망이 어디에서부터 옵니까? 외부에서부터 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 안에서는 소망이 없는데 외부에서 소망이 와요. 그래서“흑암이 없으리로다”,“영화롭게 하셨느니라”고 하세요. 곧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이예요. 우리 안에서는 여전히 흑암과 사망의 그늘이 나오는데 그 흑암을 사라지게 하고, 사망의 그늘이 영화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2절을 보세요.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흑암과 큰 빛, 사망의 그늘과 빛이 비침이 대조가 되면서 그 안에서 살던 소망없는 자들 에게 마침내 소망이 생기는 것입니다.
2. 아들이 소망이다
그러면 어떤 소망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까? 3절을 보세요.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하게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 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케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다고 하십니다. 곧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오는 하나님 나라의 창성과 즐거움의 회복이 올 것을 의미합니다. 그 즐거움을 어디에 비합니까? 추수의 기쁨이요,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처럼 주께서 승리하신 것을 누리는 즐거움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계속 4절을 보세요.
이는 그들이 무겁게 멘 멍에와 그들의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주께서 꺽으 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들의 신과 피 묻은 겉옷이 불에 섶 같이 살라지리니
주께서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고통 가운데 있는 백성의 어깨의 채찍과 막대기를 꺽으심 으로 그 즐거움이 온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진 곳에 거하는 고통속에 있는 백성이 즐거움을 회복하는데 이 일이 누구를 통해서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6절을 보세요.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누구를 통해서 회복이 옵니까? 즐거움이 옵니까? 소망이 옵니까? 오직 한 아기를 통해서 오는 것입니다. 독생하신 하나님의 아들을 우리에게 주심으로 오는 것입니다. 그는 정사를 메었다고 했는데 이것이 정부(Government)를 말해요. 곧 하나님의 왕국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통치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는 놀라운 상담자(Wonderful Counselor)이면서, 전능한 하나님이시며, 평강의 왕이시요. 곧 어린아기로 오시는 하나님이시며 인간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자, 이 아기가 자라서 어디로 갑니까? 마태복음 4장 12절 이하를 보세요.
예수께서 요한이 잡혔음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 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스룰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추었도다 하였느니라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 니라 하시더라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께서 가장 먼저 가서 사신 곳이 어디세요? 바로 스불론과 납달리 땅입니다. 이스 라엘의 북쪽입니다. 가장 먼저 앗수르에 의해 상처를 받고, 고통을 당하고, 멸시받고 소외 됐던 지역에서부터 자라고 사시고 그 곳에서 가장 먼저 사역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그 가장 고통을 당한 땅에 흑암과 사망의 그늘진 곳에 어떻게 빛이 비추기 시작했습니까? 예수님이 찾아 가서 사시기 시작하심으로 빛이 비추고, 소망이 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서부터 비로소 전파하기 시작하셨다고 했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그리고 어떻게 그 빛과 소망을 계속 이루어 가세요? 계속해서 마 4장 18절을 보세요.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제자를 삼는 동역자를 세우심으로 하나님 나라의 빛과 소망의 역사를 일으키시는 것입니다.
특별히 그 지역에서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데 계속해서 마태복음 4장 23-25절을 보세요.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 병자 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예수님의 빛의 사역이 세 가지로 나타납니다. 가르치시고, 전파하시고, 고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께서 이 빛과 소망의 사역을 어디에서 부터 시작하셨어요? 가장 먼저 상처받고, 가장 많이 고통 당하고, 가장 오랫동안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거하던 자들에게로 부터 시작하신 것입니다. 그들에게 가서 사시며 가르치시며 전파하시고 고치심으로 하나님 나라를 가져 온 것입니다.
그 구원의 역사를 이사야는 한 마디로 7장 14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임마누엘은 “임마누 + 엘”인데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말입니다. 이 이름의 계시로부터 이사야 7,8,9장 이후로 임마누엘의 역사와 결과가 쏟아져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역사가 지금도 이어지고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영원토록 함께 사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누가 이루셔요? 우리가 이룹니까? 아니예요.
3. 오직 하나님의 열심이 이루신다
7절을 보세요.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다시 3,4절을 보세요. 3절에서 우리가 갖게 되는 즐거움이 4절에서 어떻게 오는 줄 아세요? 다시 한번 자세히 보세요. 우리가 무겁게 멘 멍에와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주께서 꺽으셨다고 했어요. 그래서 우리가 흑암에서 빛으로 사망의 그늘의 고통 에서 추수의 즐거움 가운데 거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주께서 우리의 멍에와 채찍과 막대기를 어떻게 꺽으셨나요? 자신의 어깨에 그 멍에를 지심으로 자신의 등에 그 채찍을 맞으므로, 그 막대기에 찔리심으로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신 것입니다.
바로 우리를 위해 자신을 온전히 버리시고 죽이심으로 하나님의 정사와 평강이 무궁하게 하셨으며, 그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시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입니다.
이 영원한 구원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이유는 오직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의 노력이 아닌 우리의 능력이 아닌 오직 우리 주님의 열심이 그 나라를 온전히 영원히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에 바로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 있는 것이예요. 오직 우리의 열심이 아닌 하나님의 열심에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한 아기를 우리에게 주시고 그로 하여금 영원한 큰 별이 되게 하심으로 흑암과 사망의 그늘진 아픔 속에서 신음하고 좌절하고 절망하는 모든 자에게 갈 길을 밝히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 가운데 오셔서 가르치시고, 전파하시고, 고치시는 하나님 나라의 통치의 은혜가 주님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넘치고 넘칠 것입니다. 이 은혜 안에서 날마다 그 앞에서 승리의 즐거움을 누리는 역사가 넘치길 소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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