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행13:17∼23-
인생을 살다보면 수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어떤 보고에 의하면 한 사람이 일평생 만나 크고 작은 영향을 주고 받는 사람이 약 일만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을 만나고 함께 어울려 사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런데 그 일만명 가운데 과연 진정으로 마음이 맞고, 생각이 같아 깊은 영혼의 내면까지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사실 인생의 만남이 피상적 관계에서 머물다가 끝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의 삶 가운데 마음이 맞고 함께 깊은 영혼의 대화까지 가능한 사람이 주위에 있다면
그처럼 행복한 삶은 없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공동체가
그러한 관계로 나아 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더 이상 스치는 목회가 아니요 깊은 교제와 교통,
깊은 아픔과 기쁨의 공감의 목양을 하기 원합니다.
사람과의 만남도 이러할진대 만약 우리 인생이 하나님의 마음과 맞고, 하나님과 깊은 영혼 의 교제를 하며 산다면 그처럼 귀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과연 누가 하나님과 그런 만남 의 삶을 살았을까요?
오늘 하나님은 놀랍게도 내가 이새의 아들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행13:22)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맞았다’, ‘합했다’라는 말은 ‘카타’라는 전치사인데 ‘하나님 마음에∼가까이에’,‘하나님 마음을∼따르는’그런
의미입니다. 곧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을 가까이에서 따랐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다윗의 마음이 하나가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세요.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된 그 백성을 높여 큰 권능으로 인도해 내셨는데 사십년간 그들의 소행을 참으셨다고 했습니다. 또 그 후 사백오십년 동안 약속대로 그들 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고 사사까지 보내주셨는데 왕을 구하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한량없는 은혜를 부어주시는데 그 은혜를 받는 자들이 하나님 마음에 별로 들지 않은 것입 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철저히 자기 중심적으로 섬긴 것입니다. 특히 사울도 그렇지 않았습니까? 그런 배경을 지금 성경이 말하다가 갑자기 하나님께서 이 새의 아들 다윗을 만났는데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세요.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된 그 백성을 높여 큰 권능으로 인도해 내셨는데 사십년간 그들의 소행을 참으셨다고 했습니다. 또 그 후 사백오십년 동안 약속대로 그들 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고 사사까지 보내주셨는데 왕을 구하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한량없는 은혜를 부어주시는데 그 은혜를 받는 자들이 하나님 마음에 별로 들지 않은 것입 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철저히 자기 중심적으로 섬긴 것입니다. 특히 사울도 그렇지 않았습니까? 그런 배경을 지금 성경이 말하다가 갑자기 하나님께서 이 새의 아들 다윗을 만났는데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 어디에도 다윗 외에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표현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다윗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사랑하셨겠습니까? 그것을 숫자로도 알 수 있어요. 아브라 함 236 야곱 365 이사야
60 베드로 168 요한 156 바울
192 모세 812 다윗 903 이 숫자가
무엇인지 아세요? 성경이 기록된 이름의 횟수입니다.
이 숫자의 크기가 하나님의 사랑의 지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경이 사람 가운데서도 다윗의 이름을
903번나 가장 많이 언급하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얼마나 다윗을 생각 하고 계신지 증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남과 북의 이스라엘 왕 39명을 오직 다윗을 기준으로 해서 평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자신의 마음과 가장 가까웠던 다윗을 통해 내 뜻을 다 이루리라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삶입니까? 그러면 다윗의 어떠한 모습이 하나님 마음에 맞았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여 따르는 것이었을까요? 오늘 이것을 살펴봄으로 저와 여러분도 이 시대에 하나님 마음에 맞아 존귀하게 쓰임 받는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자신의 마음과 가장 가까웠던 다윗을 통해 내 뜻을 다 이루리라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삶입니까? 그러면 다윗의 어떠한 모습이 하나님 마음에 맞았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여 따르는 것이었을까요? 오늘 이것을 살펴봄으로 저와 여러분도 이 시대에 하나님 마음에 맞아 존귀하게 쓰임 받는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1. 외모보다 중심을 아름답게 하라
다윗에 대한 성경의 첫번째 기록은 그는 외모보다는 중심 곧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이 베들레헴 이새의 집에 가서 그 아들들 가운데서 왕을 삼아 기름을
부으려고 했을 때 처음에는 엘리압, 곧 맏형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마음 속으로 과연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전혀 달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고 하셨습니다. 그러 면서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위대한 선지자도 사람을 볼 때 외모를 보았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는지 몰라요. 그 사람의 스펙을 보고, 연봉을 보며, 소유를 봅니다. 그리고 '과연 이 사람이다'라고 판단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외모가 아니라 마음을 보시고 중심을 보십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이 무엇을 말합니까? 사람의 외모와 중심은 전혀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심이라는 말은 ‘레브’란 말인데 ‘속사람(inner man),마음,영혼,의지’ 이런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겉사람이 아니라 속사람을 보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베드로를 통해서도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벧전3:3,4)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값진 사람은 외모가 화려한 사람이 아니라 마음에 숨은 속사람이 아름다운 사람인 것입니다.
이처럼 다윗이 비록 막내이고 들판에서 아버지의 몇 마리 양을 지키는 목동에 불과해 아버지도 그 누구도 염두해 두지 않은 잊혀진 아들이었지만 하나님 만은 다윗을 아셨고 그의 중심과 마음의 아름다움을 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아이를 데려오라고 했고 바로 이가 그니 기름을 부으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속사람이 아름다운 여러분 한 분 한 분 다 되어 주님께 쓰임받기를 간절히 소원 합니다.
2. 사람보다 하나님을 상대하라
두번째 다윗의 마음이 하나님께 맞은 것 중에 하나가 다윗은 언제나 사람을 상대하지 않고 하나님을 상대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골리앗과 싸울 때도 그랬습니다. 당시 사울과 다윗의 세 형 그리고 이스라엘 군사들이 모두 골리앗 앞에서 40주야를 벌벌 떨고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안보이고 거인 골리앗만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두려움을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삼상17:37,45)
그들은 골리앗 앞에서는 홍해와 요단을 건너게 하신 전능하신 하나님도 잊어버렸습니다. 난공불락의 여리고를 무너뜨리신 하나님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40일을 꼼짝 못하고 감히 나서는 자가 아무도 없었던 것입니다. 왜요? 하나님을 상대하지 않고 골리앗만 상대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윗을 달랐습니다. 다윗은 골리앗이 앞에 엄연히 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않았습니다. 그는 15살 정도의 소년밖에 안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울과 형들 그리고 군사들과는 전혀 다른 용기와 담대함을 갖고 있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는 골리앗보다는 하나님을 상대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상황이 어려워 문제가 생기면 그 상황만을 상대하고, 그 문제만을 묵상하며 점점 용기를 잃습니다. 그 결과 두려움과 좌절의 그림자가 마음을 덮고 맙니다. 그러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두려움과 초조함 속에 더욱 깊이 빠져 들어가고 맙니다. 마치 바다 위를 걸어 오시는 주님을 잊어 버리고 물결만 바라보다 빠져 들어가는 베드로와 같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상황도 정확히 인식할 뿐 아니라 그 상황의 주인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상대하고자 했습니다. 그 앞에는 골리앗이 아니라 하나님이 더욱 크게 계셨습니다. 그는 자기와 함께 계신 진정한 거인인 대장 예수를 본 것입니다.
사울이 약 15년동안이나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다닐 때도 다윗은 사울을 상대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를 그렇게 죽이려고 하는 사울을 오히려 죽일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울을 상대하지 않습니다.
다윗은 오직 그 상황에서도 하나님만을 상대합니다. 그러면서 사울에게 하는 말이 왜 이스라엘의 왕이 죽은 개와 같은 나를 쫓아오시냐고 묻습니다. 그러면서 아주 중요한 말을 하는데 하나님께서 왕과 나 사이를 판단하시기를 원한다고 고백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편에서 생각해 보세요. 그토록 다윗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사울과 오직 하나님께 그 상황을 올려드리는 다윗을 보실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판단하시겠습니까? 누구를 더 사랑하실까요? 두 말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사람이 힘들게 해도 오직 하나님만 상대 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누가 속입니까? 속으십시오. 누가 오해를 합니까? 오해를 받으세요. 누가 욕을 합니까? 욕을 들으세요. 그러나 꼭 잊지 말고 기도하세요. '하나님 저 분과 나 사이를 다 아시는 주님, 판단하옵소서! 불쌍히 여기소서!'
이렇게 크고 작은 일에서 사람과 상황을 상대하지 말고, 그 현실은 냉정하게 인식하되 오직 그 상황과 사람과의 관계를 하나님께 올려 드리세요. 그것이 하나님을 상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다 아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더욱 하나님만 의지하고 상대하는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선으로 갚아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다윗처럼 하나님만 상대하는 자가 받는 은혜입니다.
3. 하나님 앞에 정직하고 진실하라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은 것에 가장 특징적인 것은 정직입니다. 진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는 내 앞에서 완전하라(창17:1)고 요구하셨습니다. 모세를 통 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너는 네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라(신18:13)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완전이라는 단어가 동일한 ‘타밈’ 이란 말인데 쉽게 말씀드리면‘흠이 없어라’란 말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타락한 죄인인데 하나님 앞에서 완전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완전하여 흠이 없을 수 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완전하라고 요구하고 계세요.
더욱 놀라운 것은 다윗이 자신이 하나님께 완전하였다고 고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삼하22장 24절에 보면 내가 또 그의 앞에 완전하여 스스로 지켜 죄악을 피하였나니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내 의대로, 그의 눈 앞에서 내 깨끗한 대로 내게 갚으셨도다 라고 합니다.
여기서 내가 또 그의 앞에서 완전하여 할 때 ‘완전’이 동일한 ‘타밈’이란 단어입니다.
문맥을 보면 다윗이 자신이 아무 흠이 없고, 죄가 없는 완전한 존재라고 하는 것 같지는 않아요. 단지 어떤 사건, 곧 하나님과 자신이 알고 있는 어떤 사건에 대해서 곧 죄악을 얼마든지 지을 수 있는 상황에서 하나님 앞에서 그 죄악에 빠지지 않으려고 애쓰고 최선을 다하고 정직하고 깨끗하게 자신을 지킴으로 승리한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실 여기 ‘완전’곧 ‘타밈’의 뜻 가운데 ‘성실’,‘정직’,‘진실’ (integrity) 이런 의미가 있어요. 곧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절대 완전할 수 없는 존재임을 아시기 때문에 너희들이 내 앞에서, 죄악에 미혹될 수 있는 상황 속에서 말씀 앞에서 성실하고 정직하고 진실하게 싸우라고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타밈’의 의미입니다.
다윗의 이러한 삶, 자기 속과 삶 가운데 ‘타밈’을 이루고자 하는 자세가 하나님 마음에 맞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도 그의 인생 가운데 크게 실패하여 큰 죄악을 저지르고 맙니다. 그러나 평상시에 그가 ‘타밈’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나단이 와서 죄를 지적할 때 그는 하나님 앞과 말씀 앞에서 즉각 회개하고,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해 달라고 간구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말씀 앞에서 진실하고 성실하게 살고자 하는 자세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사람에게 자신의 완전함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 은혜가 저와 여러분의 삶 가운데 늘 임하기를 간구합니다.
4. 무엇보다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라
다윗의 인생 가운데 결정적으로 하나님의 마음과 깊이 하나가 되어 감동을 일으키는 것은 사건을 성경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모세 이후로 그 누구도 하나님의 언약궤가 낡은 장막아래 있는 것을 보면서도 하나님의 집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달랐습니다. 여러분! 이처럼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좀 달라야 합니다. 다윗과 하나님의 관계가 어떠했는지 아세요. 삼하7:1을 보세요.
여호와께서 주위의 모든 원수를 무찌르사 왕으로 궁에 평안히 살게 하신 때에
하나님은 다윗을 위해 싸우시고 승리케 하셔서 모든 원수를 물리쳐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궁에서 평안함 가운데 살게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승리와 평안의 삶을 주신 것입 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다윗에 대한 마음이요, 사랑이요, 배려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으로 부터 사랑을 받은 다윗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 받기만 할 때가 얼마나 많읍니까? 그런데 다윗은 달랐습니다.
바로 그 다음 구절에서 선지자 나단을 불러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도다
보세요. 하나님은 다윗을 생각하시고, 다윗은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이미 다윗 에게 왕권과 왕궁을 주셨고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집을 짓겠다고 합니다. 우리는 자기의 이름을 위해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다윗은 오직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집을 지어드리고 싶어 했습니다. 곧 하나님과 다윗이 서로 먼저 생각하고 사랑하는 사이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더 다윗을 사랑하십니다. 다윗이 아무리 하나님의 사랑을 따라가려해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이 마음이 네게 있는 것이 좋도다 (왕상 8:18)라고 하세요. 그러면서 내가 너를 위해 집을 지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결국 하나님은 다윗을 위하여 그의 후손 가운데 예수님을 보내시고 예수님은 다윗과 그 언약의 백성을 위해 영원한 영광의 집을 지으시는 것입니다. 그 집을 바로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이요, 하나님 나라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윗은 수많은 세월동안 굴 속에 살면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체험하고 또 체험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굴 속을 늘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보좌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날마다 찬양의 기도로 표현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 굴 속에 임재하셔서 천국을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만민 중에서, 열방 중에서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노래하고 선포하는 삶을 살았고 하나님께서는 자기와 이처럼 마음이 맞는 다윗을 통해 예수님을 보내시는 자신의 뜻을 다 이루신 것입니다.
성경은 그렇게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행13:36)라고 한 줄로 그의 삶을 정리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도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 우리 시대에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 주 앞에 서는 영광의 삶이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하나님께서는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고 하셨습니다. 그러 면서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위대한 선지자도 사람을 볼 때 외모를 보았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는지 몰라요. 그 사람의 스펙을 보고, 연봉을 보며, 소유를 봅니다. 그리고 '과연 이 사람이다'라고 판단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외모가 아니라 마음을 보시고 중심을 보십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이 무엇을 말합니까? 사람의 외모와 중심은 전혀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심이라는 말은 ‘레브’란 말인데 ‘속사람(inner man),마음,영혼,의지’ 이런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겉사람이 아니라 속사람을 보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베드로를 통해서도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벧전3:3,4)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값진 사람은 외모가 화려한 사람이 아니라 마음에 숨은 속사람이 아름다운 사람인 것입니다.
이처럼 다윗이 비록 막내이고 들판에서 아버지의 몇 마리 양을 지키는 목동에 불과해 아버지도 그 누구도 염두해 두지 않은 잊혀진 아들이었지만 하나님 만은 다윗을 아셨고 그의 중심과 마음의 아름다움을 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아이를 데려오라고 했고 바로 이가 그니 기름을 부으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속사람이 아름다운 여러분 한 분 한 분 다 되어 주님께 쓰임받기를 간절히 소원 합니다.
2. 사람보다 하나님을 상대하라
두번째 다윗의 마음이 하나님께 맞은 것 중에 하나가 다윗은 언제나 사람을 상대하지 않고 하나님을 상대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골리앗과 싸울 때도 그랬습니다. 당시 사울과 다윗의 세 형 그리고 이스라엘 군사들이 모두 골리앗 앞에서 40주야를 벌벌 떨고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안보이고 거인 골리앗만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두려움을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삼상17:37,45)
그들은 골리앗 앞에서는 홍해와 요단을 건너게 하신 전능하신 하나님도 잊어버렸습니다. 난공불락의 여리고를 무너뜨리신 하나님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40일을 꼼짝 못하고 감히 나서는 자가 아무도 없었던 것입니다. 왜요? 하나님을 상대하지 않고 골리앗만 상대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윗을 달랐습니다. 다윗은 골리앗이 앞에 엄연히 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않았습니다. 그는 15살 정도의 소년밖에 안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울과 형들 그리고 군사들과는 전혀 다른 용기와 담대함을 갖고 있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는 골리앗보다는 하나님을 상대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상황이 어려워 문제가 생기면 그 상황만을 상대하고, 그 문제만을 묵상하며 점점 용기를 잃습니다. 그 결과 두려움과 좌절의 그림자가 마음을 덮고 맙니다. 그러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두려움과 초조함 속에 더욱 깊이 빠져 들어가고 맙니다. 마치 바다 위를 걸어 오시는 주님을 잊어 버리고 물결만 바라보다 빠져 들어가는 베드로와 같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상황도 정확히 인식할 뿐 아니라 그 상황의 주인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상대하고자 했습니다. 그 앞에는 골리앗이 아니라 하나님이 더욱 크게 계셨습니다. 그는 자기와 함께 계신 진정한 거인인 대장 예수를 본 것입니다.
사울이 약 15년동안이나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다닐 때도 다윗은 사울을 상대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를 그렇게 죽이려고 하는 사울을 오히려 죽일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울을 상대하지 않습니다.
다윗은 오직 그 상황에서도 하나님만을 상대합니다. 그러면서 사울에게 하는 말이 왜 이스라엘의 왕이 죽은 개와 같은 나를 쫓아오시냐고 묻습니다. 그러면서 아주 중요한 말을 하는데 하나님께서 왕과 나 사이를 판단하시기를 원한다고 고백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편에서 생각해 보세요. 그토록 다윗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사울과 오직 하나님께 그 상황을 올려드리는 다윗을 보실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판단하시겠습니까? 누구를 더 사랑하실까요? 두 말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사람이 힘들게 해도 오직 하나님만 상대 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누가 속입니까? 속으십시오. 누가 오해를 합니까? 오해를 받으세요. 누가 욕을 합니까? 욕을 들으세요. 그러나 꼭 잊지 말고 기도하세요. '하나님 저 분과 나 사이를 다 아시는 주님, 판단하옵소서! 불쌍히 여기소서!'
이렇게 크고 작은 일에서 사람과 상황을 상대하지 말고, 그 현실은 냉정하게 인식하되 오직 그 상황과 사람과의 관계를 하나님께 올려 드리세요. 그것이 하나님을 상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다 아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더욱 하나님만 의지하고 상대하는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선으로 갚아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다윗처럼 하나님만 상대하는 자가 받는 은혜입니다.
3. 하나님 앞에 정직하고 진실하라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은 것에 가장 특징적인 것은 정직입니다. 진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는 내 앞에서 완전하라(창17:1)고 요구하셨습니다. 모세를 통 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너는 네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라(신18:13)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완전이라는 단어가 동일한 ‘타밈’ 이란 말인데 쉽게 말씀드리면‘흠이 없어라’란 말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타락한 죄인인데 하나님 앞에서 완전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완전하여 흠이 없을 수 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완전하라고 요구하고 계세요.
더욱 놀라운 것은 다윗이 자신이 하나님께 완전하였다고 고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삼하22장 24절에 보면 내가 또 그의 앞에 완전하여 스스로 지켜 죄악을 피하였나니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내 의대로, 그의 눈 앞에서 내 깨끗한 대로 내게 갚으셨도다 라고 합니다.
여기서 내가 또 그의 앞에서 완전하여 할 때 ‘완전’이 동일한 ‘타밈’이란 단어입니다.
문맥을 보면 다윗이 자신이 아무 흠이 없고, 죄가 없는 완전한 존재라고 하는 것 같지는 않아요. 단지 어떤 사건, 곧 하나님과 자신이 알고 있는 어떤 사건에 대해서 곧 죄악을 얼마든지 지을 수 있는 상황에서 하나님 앞에서 그 죄악에 빠지지 않으려고 애쓰고 최선을 다하고 정직하고 깨끗하게 자신을 지킴으로 승리한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실 여기 ‘완전’곧 ‘타밈’의 뜻 가운데 ‘성실’,‘정직’,‘진실’ (integrity) 이런 의미가 있어요. 곧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절대 완전할 수 없는 존재임을 아시기 때문에 너희들이 내 앞에서, 죄악에 미혹될 수 있는 상황 속에서 말씀 앞에서 성실하고 정직하고 진실하게 싸우라고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타밈’의 의미입니다.
다윗의 이러한 삶, 자기 속과 삶 가운데 ‘타밈’을 이루고자 하는 자세가 하나님 마음에 맞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도 그의 인생 가운데 크게 실패하여 큰 죄악을 저지르고 맙니다. 그러나 평상시에 그가 ‘타밈’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나단이 와서 죄를 지적할 때 그는 하나님 앞과 말씀 앞에서 즉각 회개하고,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해 달라고 간구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말씀 앞에서 진실하고 성실하게 살고자 하는 자세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사람에게 자신의 완전함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 은혜가 저와 여러분의 삶 가운데 늘 임하기를 간구합니다.
4. 무엇보다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라
다윗의 인생 가운데 결정적으로 하나님의 마음과 깊이 하나가 되어 감동을 일으키는 것은 사건을 성경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모세 이후로 그 누구도 하나님의 언약궤가 낡은 장막아래 있는 것을 보면서도 하나님의 집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달랐습니다. 여러분! 이처럼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좀 달라야 합니다. 다윗과 하나님의 관계가 어떠했는지 아세요. 삼하7:1을 보세요.
여호와께서 주위의 모든 원수를 무찌르사 왕으로 궁에 평안히 살게 하신 때에
하나님은 다윗을 위해 싸우시고 승리케 하셔서 모든 원수를 물리쳐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궁에서 평안함 가운데 살게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승리와 평안의 삶을 주신 것입 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다윗에 대한 마음이요, 사랑이요, 배려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으로 부터 사랑을 받은 다윗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 받기만 할 때가 얼마나 많읍니까? 그런데 다윗은 달랐습니다.
바로 그 다음 구절에서 선지자 나단을 불러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도다
보세요. 하나님은 다윗을 생각하시고, 다윗은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이미 다윗 에게 왕권과 왕궁을 주셨고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집을 짓겠다고 합니다. 우리는 자기의 이름을 위해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다윗은 오직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집을 지어드리고 싶어 했습니다. 곧 하나님과 다윗이 서로 먼저 생각하고 사랑하는 사이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더 다윗을 사랑하십니다. 다윗이 아무리 하나님의 사랑을 따라가려해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이 마음이 네게 있는 것이 좋도다 (왕상 8:18)라고 하세요. 그러면서 내가 너를 위해 집을 지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결국 하나님은 다윗을 위하여 그의 후손 가운데 예수님을 보내시고 예수님은 다윗과 그 언약의 백성을 위해 영원한 영광의 집을 지으시는 것입니다. 그 집을 바로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이요, 하나님 나라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윗은 수많은 세월동안 굴 속에 살면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체험하고 또 체험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굴 속을 늘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보좌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날마다 찬양의 기도로 표현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 굴 속에 임재하셔서 천국을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만민 중에서, 열방 중에서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노래하고 선포하는 삶을 살았고 하나님께서는 자기와 이처럼 마음이 맞는 다윗을 통해 예수님을 보내시는 자신의 뜻을 다 이루신 것입니다.
성경은 그렇게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행13:36)라고 한 줄로 그의 삶을 정리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도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 우리 시대에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 주 앞에 서는 영광의 삶이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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