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October 17, 2014

OCT. 5. 14. 주일강단 : EPH SERIES 5 확신하며 삽시다!



KM과 EM이 함께하는 에베소서 강해시리즈 5




확신하며 삽시다

-3:113-


그리스도인 가운데 두 유형의 사람이 있습니다. 바울처럼 어느날 갑작스럽게 변한 사람이 있고, 디모데처럼 모태신앙으로 천천히 변화된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형, 디모데 형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유형에 속하는지요. 둘 다 복되고 감사한 것입니다그런데 바울의 생애를 보면 두 단계로 나눌수 있습니다. 먼저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삶이요, 두번째는 예수님을 만난 후의 삶입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예수님을 만나기 전과 만난 후의 삶은 완전히 다릅니다

그러나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과 만난 후에 공통점도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세요? 그것은 그가 어떤 삶을 살았던지 확신에 차 있었다는 것입니다예수 믿기 전에도 그의 삶은 너무 확신에 차 있었습니다. 어떤 확신이예요? 잘못된 확신 이요, 그릇된 확신이었습니다. 확신은 좋은 것이지만 잘못된 확신처럼 무서운 것은 없어요. 잘못 알고 있는데 그것이 옳다고 확신 가운데 있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것입니다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다음에 바울은 자신이 잘못된 확신 속에 있었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바른 확신을 갖고 살게 되는데 이제 이것이 옳다는 것을 아니 그 확신은 더욱 굳건해 진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확신이 없으면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르고 확신이 있다면 그것처럼 귀한 것은 없습니다. 신앙이 바로 이래야 합니다. 12절을 보세요.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

오늘 이 바울의 담대함과 확신이 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그러면 바울이 가졌던 확신은 무엇입니까? 그렇게 담대함과 확신 속에 하나님께 나아가며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비밀을 알라

3절을 보세요.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먼저 간단히 기록함과 같으니

사랑하는 여러분! 알아야 확신을 갖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알아야 할까요? 바울은 1 9절에서비밀이란 단어를 사용하고, 여기서 다시비밀이란 말을 반복해서 사용합니다.(3:3,4,9) 성경에서 반복되어 나오는 단어는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곧 비밀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말은 뮈스테리온이란 말로 어원이입을 다물다란 뜻입 니다. 곧 신비, 감추어진 것의 의미인데 여기서 영어의 미스테리(mystery)가 나온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것에 대해 미스테리하면 확신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잘 모르겠는데 어떻게 확신을 가질 수 있겠어요? 그런데 이 미스테리가 하나 하나 풀리면 깨닫게 되면서 확신이 오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미스테리가 무엇으로 풀린다고 하세요?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이라고 하셨잖아요? 무엇으로 미스테리가 풀렸다구요? 오직 계시로 풀리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하나님이 계시를 주지 않으시면 비밀을 절대로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이성과 그 무엇으로도 알려고 해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왜요? 그런것으로는 하나님이 감추신 비밀, 미스테리를 해결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계시로만 미스테리를 알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계시아포칼륍시스란 말로 덮개를 벗기다란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덮개를 벗겨주지 않으면 절대로 비밀을 알수가 없어요. 어떤 비밀이요, 하나님이 누구시고, 성도가 누구이며, 그의 과거 현재 미래가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구원받고, 변화되는 것인지 전혀 알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세요. 비밀로 감추어 놓으신 분도 하나님이요, 계시 곧 덮개를 벗기시므로 비밀을 알게하신 분도 하나님이세요. 그러면 그 계시가 어떻게 왔습니까? 5절을 보세요.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 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셨으니

성령께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나타내셨다고 하셨어요. 곧 성령께서 사도들과 선지자 들에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인데 그것이 무엇으로 기록되었어요? 성경으로 기록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말씀을 계시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씀하시는 것은 다른 세대들에게는 알리지 않으셨던 하나님의 감추셨던 비밀을 이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말미암아 비밀을 알게 하시고 그 비밀을 성경으로 다 드러내셨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바로 그 사도 중의 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 곧 계시로 자신에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을 자신이 먼저 간단히 1,2장에서 기록했고 그것을 읽으면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곧 성령께서 알게 하신 것을 기록한 것인데 그것이 에베소서 곧 성경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떻게 비밀을 알 수 있는가 하면 사도와 선지자들을 통해서 성령으로 계시된 성경을 통해서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잘 배워 알아야 비밀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 비밀을 아는 은혜가 우리 말씀으로 사는 교회에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비밀은 무엇인가?

그러면 비밀은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그리스도가 비밀입니다. 예수가 비밀입 니다. 지금도 세상의 불신자들에게는 구원이 미스테리입니다. 알수 없습니다. 덮여져 있습니다. 아직도 비밀입니다.

그런데 바울의 기도대로 마음의 눈이 밝혀진 사람들은 이제 그 비밀을 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알기 시작합니다. 점점 더 밝게 알게 되는데 계속 말씀드리지만 처음과 끝, 영원과 영원을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의 다섯단계 곧 미리 아시고, 미리 정하시고,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시는 비밀의 단계를 다 알게 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이것이 덮여있고 감추어져 있어 보고 싶어도 못 보았는데 선지자와 사도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성경계시를 기록하므로 우리에게 명백히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누굴 통해서 이 다섯단계의 구원이 이루어집니까?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을 통해서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비밀의 핵심입니다. 곧 비밀이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인 것입니다.  

이제는 이 덮개가 열린 비밀, 곧 복음이 누구에게 전파됩니까? 이방인입니다.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면 그들이 어떻게 된다고 하셨어요?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됩니다. 함께 지체가 됩니다.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됩니다.(3:6)   

이방인들이 누구예요. 유대인들에 의해 개처럼 취급받던 사람들이예요. 외인이요, 무할례 자요, 이스라엘 밖의 사람이요, 언약의 약속 밖에 있었던 사람들이요, 세상에 소망이 없던 자요, 하나님도 없던 자들이었잖아요.

그런데 이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되니 얼마나 영광중에 영광입니까? 이것이 바로 복음인 것입니다. 복음 때문에 이처럼 놀라운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곧 비밀되신 예수님이 복음으로 우리에게 전파되어 우리도 복음을 믿고 변화되어 그리스 도와 함께 상속자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므로 성령께서 또 다른 계시를 더 이상은 주시지 않아요. 그래서 지금 마지막 때에 가장 미혹하는 자들이 나타난다고 하셨는데 소위 자칭 사도요, 자칭 선지자라는 자들이예요. 지금도 자칭, 타칭 사도와 선지자라고 주장하면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아세요? 예수님과 복음 외에 또 다른 계시를 받는다는 의미예요. 그래서 몰몬교 같은 경우 선지자가 나타났다며 황금판을 받아 성경계시외에 몰몬경을 받았다고 하잖아요. 이단으로 가는 것입니다.   

지금 시대는 비밀의 덮개를 완전히 열어 놓으신 시대예요. 그래서 예수님과 복음이 다 드러나 있어요. 또 다른 예수와 또 다른 복음이 필요없어요. 그것이 갈라디아서의 메시지예요. 이제는 예수님과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 전파되어짐으로 열방이 듣고 믿어 회개하여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곧 복음시대인 것입니다. 이 복음을 온전히 증거하는 것이 교회와 성도의 사명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개된 비밀인 예수님과 복음을 담대히 증거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비밀을 맡은 자

그러면 더 나아가 바울이 받은 은혜는 무엇입니까? 저와 여러분이 받은 은혜는 무엇이어야 합니까?

먼저 7절을 보세요.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의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

바울이 받은 선물은 그가 복음을 위한 일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복음을 거부하고 복음이 잘못됐다고 확신하여 수많은 사람을 핍박했던 바울이 이제는 복음의 일꾼 이 된 것입니다. 곧 비밀을 공개하는 사명을 맡은 자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곧 은혜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저와 여러분도 복음의 일꾼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바울이 자신을 어떤 복음의 일꾼이라고 소개합니까? 8절을 보세요.

모든 성도 중에 / 지극히 작은 자보다 / 더 작은 나에게 /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사랑하는 여러분!
바울이 얼마나 겸손한지 보세요.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모든 사도, 모든 제자도 아니어요. 모든 성도라고 하고 있어요. “모든 성도 중에서도 지극히 가장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라고 해요. 최상의 겸손의 자세입니다.

사실 우리 속에 있는 아담은 우리 안에서 위로 자라가라고 부추킵니다. ‘너가 제일 크다, 높다, 더 높아져라고 속삭입니다. 그래서 많은 것을 성취하면 마음도 높이 올라가 있습니다. 마음이 높이 올라가면 올라 갈수록 낮게 보이는 자들을 무시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교만입니다. 아담의 제자입니다.

그런데 바울을 보세요. 그는 거꾸로 아래로 자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누구를 닮은 것입 니까? 가장 지극히 높은 자리에서 가장 낮고 낮은 자리로 내려가신 분이 누구십니까? 예수님입니다. 바울이 지금 누구를 닮았어요? 오직 예수님을 닮아 아래로 자라는 은혜를 깊이 고백하고 있어요. 진짜 예수의 제자입니다.

사실은 아래로 자라가는 것이 바울이 받은 가장 큰 은혜입니다. 놀랍게도 위로 자라감의 결과는 추락이지만 아래로 자라감의 결과는 오히려 예수님 옆에 앉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진짜 예수님 제대로 만난 사람은 겸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진짜 성령님 제대로 만난 사람 은 아래로 자라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아담성으로 꽉차 있는데 어설프게 만나면 위로 자라갑니다. 교만해집니다. 예수님 만났다고 하면서 성령체험 했다고 하면서 교만하면 무엇인가 이상한 것입니다. 어울리지 않는 것입니다.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아래로 자라가야 해요. 겸손해야 해요. 그렇게 오직 하나 님의 은혜의 선물로 자신이 복음의 일꾼 된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복음의 일꾼으로서 이제 무엇을 해야 합니까? 계속해서 보세요.

먼저는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복음의 일꾼이 해야할 일은 헤아릴 수 없는 주님의 부요함을 아직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전도가 무엇입니까? 9절에 정확히 정의가 내려져 있어요.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경륜오이코노모스인데 관리하다, 경영하다란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전도는 영원부터 창조주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하나님의 구원의 비밀을 어떻게 경영해 오셨는지 밝은 빛 가운데 가지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둠 속에서 인생의 의미를 모르는 자들 에게 이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비밀을 밝히 드러냄으로서 그들도 이 빛 안에서 전혀 새로운 하늘의 상속자로 살아가게 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사명이요, 교회의 사명이예요.
  
10절을 보세요.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 하늘에 있는 통치자나 권세들이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누구를 통해서 알게되는 것이 예요? 교회입니다. 비밀의 열매요, 비밀을 맡은 교회를 통해 영원부터 영원까지의 그리스도 예수를 통한 하나님 나라의 회복이 다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원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왜 이 땅에 교회를 세우셔요? 왜 우리 LWC말씀으로 사는 교회를 세우 셨어요? 이 땅에서는 복음으로 하나님의 경륜을 밝힘으로 이방인들을 돌아오게 하고, 우주적으로는 복음으로 하나님의 경륜을 밝힘으로 하늘의 통치자나 권세들이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놀라는 일입니까?   

여기서 하늘의 통치자나 권세들은 천사나 악한 세력 둘다 가리킵니다. 영적 존재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지상의 교회와 천상의 교회를 보게 하심으로 자신의 지혜를 입증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얼마나 영광스러운지 몰라요. 교회를 제대로 알면 교회가 얼마나 귀한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비밀에 능력이 있다

1절을 보세요.
이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인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이 말하거니와

13절을 보세요.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

1절에서는 갇힌 자 된, 13절에서는 여러 환난이라고 합니다. 1절에서는 너희 이방인을 위하여 갇힌 자 된 것에 대해 말하겠다는 것이고, 13절의 결론이 무엇이예요?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 그래요? 그것이 오히려 에베소 교회의 영광 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사도인 바울을 보세요. 감옥에 갇혀 온갖 환난을 다 당하면서도 오직 그가 에베소 성도들에게 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담대함과 확신 가운데 하나 님께 나아가라는 것입니다.(12) 어떻게 감옥에서 이렇게 담대함과 큰 확신으로 나아가라고 할 수 있습니까? 바울은 바로 그 감옥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과 비전이 당시 에베소 교회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가 가야할 길 또한 이 덮개가 열린 비밀이신 예수님과 복음의 큰 확신속에서, 복음의 겸손한 일꾼으로 아직도 여전히 비밀을 모르는 자들에게, 또 하늘의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경륜을 밝히 드러내는 성도와 교회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말할 수 없는 영광이 오늘 설립감사 예배를 드리는 우리 교회 앞 날에 넘쳐 흐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Saturday, October 4, 2014

SEP. 28.14. 주일강단 : EPH SERIES 4 생각하며 삽시다!

KM과 EM이 함께하는 에베소서 강해시리즈 4


생각하며 삽시다!

-2:11~22-



우리는 사도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보낸 서신을 통해 왜 하나님을 찬송하며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기도하고, 무엇 때문에 감사해야 하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사실 삶속에 하나님을 찬송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며 사는 것이 얼마나 복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바울은 오늘 말씀 가운데 한 단계 더 나아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2 11절을 보세요. 무엇이라고 합니까?

그러므로 생각하라 고 합니다.

여기서 그러므로1장부터 210절까지 서론 부분의 결론적 표현입니다. 사실 믿음 생활 가운데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결코 우리의 믿음이 맹목적이 되어 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 성경 66권의 계시를 주신 것은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신의 형상으로 만드셔 인격을 갖게 하셨 습니다. 인격은 생각하고 느끼고 결정하는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삶에 생각 하게 하시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모릅니다여기서 생각하라는 말은 므네모뉴오라는 말인데 마음에 두다”, “상기하다”, “기억하다이런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이 행하신 모든 일을 마음에 두고 기억하고 생각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흔들림이 없습니다. 곧 우리의 생각이 하나님과 하나님이 행하신 사역에 뿌리 내려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베드로를 기억하시지요? 베드로 사도가 무엇이라고 하는 줄 아세요? 그의 노년에 쓴 서신 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서 있으나 내가 항상 너희에게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니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 같이 나도 나의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내가 떠난 후에라도 어느 때나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벧후1:12-15)

베드로 사도가 무엇이라고 하는 것입니까? 이미 알고 진리에 서 있으나 그래도 항상 생각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곧 자신이 순교 직전까지도 너희가 생각하게 하는 것이 자신의 끝까지 해야 할 사명이라고 하는 것이예요. 심지어 자신이 죽은 후에도 어느 때나 생각나게 하려고 한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바울이나 베드로나 우리 성도들이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까? 잘못된 생각이 아니라 바른 생각을 하며 살아야 하는데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울 사도가 바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 에 이것을 증거하기 원합니다.



그리스도 밖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라 (2:11~12)
 

12절을 보세요.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먼저 그리스도 밖에 있었던 때를 기억하고 그리스도 밖에 있었다는 것이 어떠한 상태였는지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여섯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①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② 무할례자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요 ③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요 ④ 약속의 언약들에 대해서 외인이요 ⑤ 세상에서 소망이 없는 자요 ⑥ 하나님도 없는 자 였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밖에 있을 때의 에베소 교회 성도들의 모습이요. 바로 우리의 옛모습이요. 지금도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여기서 결정적으로 크게 두가지 소외를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앞에 네가지 곧 이방인, 무할례자, 이스라엘 밖의 사람, 언약의 약속들에 대하여 외인이라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백성 곧 이스라엘과 분리된 상태를 말합니다. 둘째는 뒤에 네가지 세상의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다는 것은 곧 하나님으로 부터 분리된 상태를 말합니다.

곧 하나님으로 부터 분리되어 있고,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부터도 분리되어 있던 상태가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것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이 상태를 한마디로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세상에서 소망이 없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성경은 분명히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이 세상에 소망이 없는 자들이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소망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으로 부터 오는 언약의 복을 전혀 받을 수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에베소서의 용어로 말씀드리면 하늘의 상속권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늘의 상속권이 없는데 이 세상에서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이것이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바로 그리스도 밖에 있었던 자들이었다는 것, 곧 이방인이요, 무할례자요,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요, 언약의 약속들에 대해 외인이요 따라서 세상에서 소망이 없는 자요, 하나님도 없는 자였다는 것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진리를 되새김질 하고 기억하고 생각할 때 우리의 믿음이 굳건하여 실족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라 (2:13~18)
 


13절을 보세요.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먼저는 그리스도 밖에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라는 것이었고, 그 다음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13절을 이제는 으로 시작합니다. 11,12절은 그리스도 밖에 있었을 때고, 13절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삶을 말합니다. 그런데 전에 상태를 한마디로 무엇이라고 하세요? 멀리 있던 너희라고 합니다. 곧 하나님과 멀리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 밖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가까워졌다고 합니다. 누구하구요? 먼저 하나님과 가까워 진 것입니다. 둘째는 먼저 언약 백성된 자들과 가까워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냥 가까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때문에 가까워졌다고 하나요? 바로 그리스도의 피, 예수의 피, 곧 보혈로 가까워졌다고 하십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의 피가 아니고는 그 어느 것으로도 하나님과 가까워질 수 없음을 말합니다. 또한 언약 백성들 가운데 들어갈 수도 없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리스도의 피 곧 예수님의 희생 죽음 만이 진정한 화해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14절을 보세요.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이처럼 하나님과 원수된 것, 유대인과 이방인이 원수된 것이 화해되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 중간의 막힌 담을 그 누구도 헐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자신의 육체를 헐어 율법의 저주를 다 받으시고 그 원수된 조문을 다 폐기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십자가로 하나가 되는데 그것을 새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잘 보세요. 여러분! 그리스도 밖의 옛 사람은 절대로 화해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는 상대방을 용납하거나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저 율법의 조문으로 정죄하고 판단하며 분리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지음 받은 새사람은 다릅니다. 용서와 용납과 화해의 사람입니다. 인류 역사에서 둘이 하나 되기가 가장 어려운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유대 인이 이방인을 받아 들이고, 이방인이 유대인을 받아 들이는 것입니다. 그 만큼 세계관을 깨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그것을 해 냅니다. 십자가는 정죄하고 분리하는 원수된 것을 쳐서 소멸 합니다. 그러므로 나의 옛사람이 정죄와 분리를 일삼으려고 할 때 십자가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그 십자가에서 내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이 살아나야 용납이 되고, 용서가 되며, 화해가 됩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사람의 정체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이 진정한 십자가의 사람이 되면 나의 원수마저도 용서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십자가는 놀랍게도 두 종류의 화해를 가져옵니다.

첫째는 수직적 화해로 하나님과 화목을 가져옵니다. 이것이 모든 것을 다 풀어 자유케 합니다. 인간은 하나님과의 화해로 부터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수평적 화해입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의 화목입니다. 곧 사람과 사람의 화해입니다. 그리스도 밖에서는 이것이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십자가 안에서는 가능합니다. 아니 가능해야 합니다. 십자가로 인해 하나님과 이웃과 화해하는 사람만이 진정한 성도요, 이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어떤 존재입니까? 18절을 보세요.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라고 했어요. 사람으로 말미암아 가 아니예요. 오직 십자가로 만 가능해요. 우리 둘이 한 성령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간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한 성령안에서 둘이 하나인 우리가 되어 아버지께 나아가는 것이 교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부자나 가난한자나, 배운자나 못배운자나, 갓난 아이나 백발의 어른이나, 할례자나 무할례자나, 남자나 여자나, 자유자나 종이나, 영어교회 나 한어교회나 오직 예수로 말미암아 성령안에서 하나가 되어 하나님께 나아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언어와 민족과 인종과 빈부과 계층을 뛰어 넘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하신 것입니다. 잘 보세요. 하나가 되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그리스도 말미암아 성령 안에서 하나된 것을 힘써 지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은 자신 안에 형성된 세계관과 경험의 한계를 뛰어 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요나가, 신약에서는 베드로가 이방인이 구원받는 것에 대해 상당히 어렵게 이해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이 두 분의 생각을 열어 주시고 바꾸어 주심으로 이방 선교의 길이 활짝 열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가 하나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고 그 생각대로 우리 공동체가 하나됨을 힘써 지키고 누리는 역사가 넘치길 축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누구인지 생각하라(2:19,20)
 


그러면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누구입니까? 19절을 보세요.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그리스도 밖에서는 외인이었는데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는 외인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나그 네란 주인과 상반되는 외국인을 말합니다. 이제는 나그네와 같은 낯선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제부터는 그리스도 안에서 십자가로 말미암아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조국에 사는 우리 민족들보다 외국에 나와 사는 우리가 시민권의 의미를 더욱 잘 알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살면 시민권이 갖는 의미를 참 잘 알게 됩니다. 시민은 자유와 평등 가운데 모든 의무를 행해야 하고, 모든 권리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 누구도 시민의 권리를 침해할 수 없습니다. 미국의 시민도 이러한데 하물며 하나님 나라의 시민은 어떠하겠습니까? 다음으로는 하나님의 권속이라고 하셨습니다. 권속은 하나님의 집의 가족이라는 말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아버지가 되시고, 예수님이 맏아들 곧 맏형이 되시고, 우리가 그의 형제가 되어 공동상속자로 한 가족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십자가의 피가 얼마나 놀라운지 알아야 합니다. 이방인이요, 무할례자요, 이스라엘나라 밖의 사람이요, 약속의 언약들에 대해서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는 자요, 하나님도 없는 자였던 우리의 신분이 완전히 변화된 것입니다. 성도가 누구입니까?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고, 하나님의 가족인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가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화해를 누리십시오. 이웃과의 화해를 누리십시오. 그래서 수직과 수평의 관계 속에서 화해 와 화목이 넘치는 진정한 십자가의 새사람, 새교회로 세워지기를 소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자라가는지 생각하라 (2:21,22)
 

20절을 보세요.

너희는 사도와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여기서 갑자기 건축용어가 등장합니다. “, 세움, 모퉁잇돌이런 단어들이 주는 메시지는 이제 성도가 새로운 건축자에 의해 지어져 가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 밖에 있을 때는 하나님없이 내가 커지려고 했습니다. 내 왕국을 세우려고 했습 니다. 나도 모르게 사단이 세우는 나라에 일군 노릇을 했습니다. 사탄이 세우려는 건축에 열심히 동참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십자가 안에서 우리는 전혀 다른 건축에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완전히 다른 건축의 작은 돌들로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그 건축의 기초는 무엇입니까?  세상으로 부터 버림받은 돌입니다. 곧 세상으로 부터 천대받고 외면 받고 이방 취급받고, 죄인 취급받아 건축자들의 버림 받은 돌입니다. 곧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은 이 버림 받은 돌인 예수님을 새로운 건축의 모퉁 잇돌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선지자와 사도의 터가 놓였습니다.

바로 이 모퉁잇돌과 터로부터 세상에서 사탄이 세우려고 했던 것과 전혀 다른 새로운 건축 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요. 하나님 나라입니다.

21,22절을 보세요.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가 어떻게 되어 가는지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과 처소가 되어 간다고 하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 완성된 모습이 바로 요한계시록 21장에 나옵니다. 곧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입니다. 곧 신부 어린 양의 아내라고 하셨습 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세우시는 궁극적인 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므로 그리스도 밖에 있었던 때를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 얼마나 얼마나 큰 영광인지 생각하십시오. 그리스도의 피가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케 하고, 사람과 사람을 하나되게 하심을 기억하십시오. 바로 이 십자가의 화목케 하심에 우리의 옛사람과 옛생각과 옛성품을 다 녹여내고 전혀 새로운 예수님의 마음으로 하나님과 화목케 되고 사람과 화목케 되었음을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이제 함께 지어져 가고 있음을 깊이 생각하십시오. 이것이 교회를 보는 바른 눈이요, 생각입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생각이 바로 저와 여러분의 생각이 되어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이 우리 공동체 안에 온전히 이루어져 서로 사랑하고 세워주고 격려하며 함께 자라가는 은혜가 넘치기를 간절히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